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산재 사고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석산이 바로 신재근 님의 오랜 일터다. 한창나이의 청년들도 버거운 채석 일을 그는 50년에 걸친 오랜 경력과 타고난 성실함으로 묵묵히 해냈다. 일을 하다 좀처럼 다쳐본 적이 없어 평생 근로복지공단이 무슨 일을 하는 기관인지도 몰랐다고 신재근 님은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산재 사고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신재근 님 산의 양측 그리고 아래에 구멍을 뚫고 40m에 달하는 와이어로 감아 기계로 당기면 거대한 돌이 부서집니다. 그리고 부순 돌조각을 1.5m 단위로 다시 절단하길 반복하지요. 그날도 같은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을 절단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어요. 절단한 2m 높이의 돌이 제 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 재빠르게 몸을 돌렸지만 오른쪽 다리는 미처 피하지 못했죠. 그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치료를 받는 내내 그때의 트라우마가 저를 괴롭혔고요.

그는 즉시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급성기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손상 정도가 심각해 우측 하지 대퇴부 절단 수술이 불가피했다. 나머지 좌측 대퇴부도 상처를 입은 상황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신재근 님은 자신에게 벌어진 현실에 절망했다. 석산만큼이나 단단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지만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내 인생은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하는 걱정과 함께 평생 해온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수술 부위의 회복을 기다리며 이렇다 할 재활도 시작하지 못하던 당시에는 우울감이 더 컸다고 신재근 님은 회고했다.

신재근 님 급성기 치료가 끝나고 수술한 병원의 권유를 받아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으로 옮겼습니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인천병원에 오니 저보다 더 심각한 장해를 입은 환자가 많더군요. 두 다리가 없거나, 두 팔 없이 씩씩하게 재활 치료를 하는 환자를 봤어요. 한쪽 발을 잃었다고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했던 지난 시간이 무색한 느낌이었죠. 그때 문득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재활과 함께 시작한 제2의 인생

재활 특진 대상자로 선정된 신재근 님은 곧바로 집중 재활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재활공학연구소의 지원으로 우측 발목 위 절단 부위에 맞는 의지도 제작했다. 원직 복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보다 장기적인 치료를 위해 연고지인 근로복지공단 순천병원으로 옮겨오면서 재활 종합계획 평가도 새롭게 이루어졌다. 순천병원 재활지원부 최유진 과장은 신재근 님의 원직 복귀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재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유진 과장 의족을 착용하고 순천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햇빛에 많이 그을린 듯한 모습을 보며 현장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비록 휠체어를 타고 계셨지만 다부지고 강인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고요. 당시에는 사업주와의 갈등으로 원직 복귀에 대한 불안이 큰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꼭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곧바로 직장복귀지원팀이 모였고 재활의학과 의사를 중심으로 재활종합계획 평가와 목표 설정에 들어갔죠. 먼저 하지 절단에 대한 집중재활치료와 집중의지훈련이 시작됐고, 심리적 측면에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일상생활에 대한 제약 때문에 두려움이 크셔서 사회사업과 연계해 집단 심리회복 프로그램에 들어갔습니다. 척박한 노동 환경에서 좀처럼 내보일 수 없었던 마음을 표출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는 한편, 정서적으로 지지해 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2주간의 집중 재활 치료 프로그램은 매트에서 이동하는 등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의족을 착용하고 정상적인 보행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재활팀은 매일 신재근 님의 보행을 분석해 잘못된 자세를 수정하고, 안정적인 보행이 가능하도록 주기적인 피드백을 제공했다. 직업 특성상 산을 오르내리며 굴곡이 심한 길을 걸어야 하는데 과연 의지로 가능할지 의구심도 있었다. 그러나 신재근 님은 흔쾌히 할 수 있다며 강한 재활 의지를 드러냈다.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의료진에게도 한계는 없었다. 작업강화능력훈련을 통해 매일 4시간씩 원직에 가까운 환경에서 전처럼 작업이 가능하도록 꾸준한 훈련이 시작됐다. 결국 재활 12주 차에는 병원이 아닌 작업 현장에서 직접 전에 하던 일을 수행하는 훈련도 무사히 해냈다.

최유진 과장 환자의 굳건한 의지 덕분에 정상 보행은 물론 오르막길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세를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었어요. 사업주와의 갈등이 컸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개입을 해도 될지 헷갈리기도 했고요. 사업주와의 소통은 쉽지 않았지만 환자의 복귀 의지를 되새기면서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중간에서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많이 어려웠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사업주와 대상자 모두 만족하는 원직 복귀 결과를 얻어냈기 때문입니다.

초기 상담부터 직업 복귀까지 함께하는
산재의료 코디네이터

최유진 과장은 대부분의 산재환자가 다시 일하고 싶어하지만 사업주와의 갈등이나 장해에 대한 절망감으로 뜻을 접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사업주와의 갈등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렵고, 상병 상태 역시 빠른 시간 안에 회복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재의료 코디네이터는 원직 복귀가 어려울 때도 현재 상태에서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사회로 다시 복귀할 방안을 끝까지 고민한다고 확언한다.
현재 근로복지공단 병원에서는 전문 산재의료 코디네이터가 소속 병원에서 전문 재활치료를 위해 내원한 산재환자에게 초기 상담을 진행하는 한편, 다학제 및 팀 평가, 통합 서비스 회의를 주관하여 모든 치료과정에 참여한다. 대상자의 문제점 확인과 욕구 등을 파악하여 사회 복귀 및 직장 복귀가 이루어지도록 꾸준한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요양이 종결된 후 사회복지 서비스 신청과 직업훈련 신청 등 사후관리도 산재의료 코디네이터가 직접 관여한다.
최유진 과장의 오랜 노력 끝에 신재근 님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사업장에서는 신재근 님을 위해 업무 강도를 조절했고, 신재근 님 역시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발휘하여 능숙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다. 늘 전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병원을 찾는 신재근 님을 볼 때마다 최유진 과장을 비롯한 순천병원 의료진에도 뿌듯한 미소가 훈장처럼 맴돈다.

최유진 과장 환자의 초기 상담부터 종결까지 함께 고민하고, 한 단계씩 나아가며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였습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례가 종결되고 치료 너무 잘 받고 간다며 감사를 전하실 때나, 마음까지 나아지는 기분이라고 하실 때마다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산재 사고 후 처음에는 다들 크나큰 절망에 빠져 계세요. 하지만 그 끝에서 다시 희망을 만날 때까지 저희가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만 ‘I can do it!(나는 할 수 있다)’이라는 생각만 가져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이끌어드리겠습니다. 근로복지공단 병원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신재근 님 어린 시절부터 일터에 나가 평생 일로 나를 증명하며 살아왔어요. 그 일을 하지 못했을 때의 절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또 사고 당시의 트라우마도 겪어본 적 없는 큰 고통이었지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고 이후 근로복지공단 병원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입니다. 곁을 지켜준 아내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시 찾은 희망이 헛되지 않도록, 최유진 과장님을 비롯한 순천병원 의료진의 헌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재환자의 의지만 있다면 함께하는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할 수 있다’로 바꾸는 힘은 환자 그리고 의료진, 산재의료 코디네이터의 믿음과 팀워크에서 나왔다. 다시 당당히 일터로 돌아온 신재근 님처럼 힘든 시간을 보내는 환자들의 걱정 어린 물음표가 어서 빨리 확신으로 바뀌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