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는 11월에서 3월까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로 여행하기 적기로 꼽힌다. 15도에서 20도 사이의 기온으로 한국의 가을 날씨에 가깝다. 또한 대중교통이 잘 마련되어 있어 처음 방문한 여행자들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먼저 타이베이 도심 풍경부터 하나하나 살펴보자.
중정기념당은 대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장제스(蔣介石·장개석)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중정’이란 이름은 장제스의 본명이라고 한다. 1975년 그가 서거한 이후 건립이 추진되었으며 1980년 5월 개관했다. 파란 기와에 웅장한 건물은 멀리서부터 위엄을 느끼게 한다. 총 89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장제스의 서거 당시 나이를 뜻한다. 그의 집무실을 실제 그대로 옮겨놓은 공간부터 그와 관련된 역사적인 자료를 모두 모아 두었다. 매일 여덟 번, 정시마다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도 빼놓지 말고 감상할 것.

국부기념관도 역사적인 장소로 함께 방문하길 권한다.
대만과 중국 모두의 국부(國父) 쑨원(孫文)을 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1972년 5월 개관했으며 30만 권의 책을 소장한 도서관부터 전시장, 공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이베이 시민들의 문화생활과 쉼터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또한 이곳 광장에서 타이베이의 상징이자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로 꼽혔던 타이베이 101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타이베이 101은 약 509m의 높이로 정식 명칭은 타이베이 세계금융센터(Taipei World Financial Center)이다. 1999년 착공해 2004년 정식 개장했으며 글로벌기업의 사무실과 쇼핑몰, 푸드코트 등으로 나뉜다.
또한 88층부터 91층까지는 실내외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속도는 어머어마하게 빠른데 마치 비행기를 탔을 때와 같은 먹먹함을 느낄 수 있다. 추가 비용을 내면 101층 전망대도 방문할 수 있으며, 타이베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시내 전망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한편, 타이베이 101은 매해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 시각에 맞춰 화려한 불꽃놀이가 열려 장관을 이룬다. 대만의 대표하는 신년맞이 명물로도 각광을 받는다.

타이베이의 밤은 낮만큼이나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타이베이를 찾는 여행자들에게 야시장은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인데, 기념품 쇼핑보다는 현지 길거리 음식을 맛보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타이베이 곳곳의 야시장 중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은 바로 스린야시장이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시장의 중심부는 지붕이 덮여 있어 비가 와도 끄떡없으며 낮보다 화려한 불빛이 쏟아진다. 각종 액세서리와 의류, 생활용품 등을 구입할 수 있고, 버블티와 지파이를 비롯해 큐브 스테이크와 망고 빙수까지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야시장이라 해서 밤새 열린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정확히 말하면 저녁 시장이라고 봐야 한다. 보통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많은 이들이 찾으며 자정이 지나면 대부분 문을 닫는다.

스린야시장 외에도 타이베이에는 특색 있는 야시장이 많다.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라오허지에야시장은 언제 방문해도 인산인해이지만 11자 구조라 인파를 따라 천천히 구경하고 반대편으로 돌아 나오면 되니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입구에 자리한 후추화덕만두로 워낙 길게 줄이 늘어서 있어 굳이 애쓰지 않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스다야시장은 현지에서 ‘스다(師大)’로 줄여서 부르는 국립대만사범대학교 옆에 자리하고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야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발전한 곳으로 규모는 작지만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매장이 많아 다른 야시장과는 다른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닝샤야시장은 야시장의 먹거리 트렌드를 이끄는 곳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야시장 먹거리들이 보통 이곳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체 야시장에서 음식을 파는 곳이 90% 이상을 차지하며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닝샤야시장에서 파는 굴전은 국내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러 번 소개되어 유명한데,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으로 한국의 바삭한 굴전과는 다른 감칠맛을 선사한다.

타이베이는 도심을 조금 벗어나면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지역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지만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돌아보려면 버스투어나 택시투어를 이용하길 권한다. 일명 ‘예스진지’ 투어라고 불리는데, 그 첫 여행지는 바로 예류지질공원이다.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 낸 절경이 인상적인 곳으로 버섯바위, 벌집바위 등을 만날 수 있다. 암석 위쪽은 풍화와 침식을 견뎌내고 아래쪽은 풍화와 침식이 상대적으로 심하게 이루어져 마치 버섯이나 벌집 모양을 연상시킨다. 이곳의 마스코트인 여왕바위는 버섯바위의 일종으로 올림머리를 한 여왕의 옆모습과 흡사한데 풍화와 침식이 계속 진행중이라 언제 목이 부러질지 모른다고.

두 번째 여행지인 스펀은 미디어 속에서 자주 등장해 익숙한 곳이다.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천등을 날린 장소가 바로 여기다. 대만의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는데, 철도가 마을 중심을 가로질러 운행하면서 특이한 모습에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 열차는 1시간에 한 번 운행되며, 철도 위에서 소원을 적은 천등을 날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욱 인기를 모으게 되었다. 근처에 스펀 폭포도 자리하고 있어 천천히 걸어가 봐도 좋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여행지인 진과스와 지우펀은 대만의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다. 1890년 대만의 서부를 가로지르는 철도 공사를 진행하던 중에 한 인부가 진과스 근처에서 사금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 지역에 다량의 황금이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대두되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1893년 진과스 근처인 지우펀에서 금맥이 발견되면서 진과스와 지우펀은 금광촌으로 변모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1895년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하며 대만은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고 이곳은 일본인들의 금광 사업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외국인 포로들이 강제노역을 하기도 했다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도 한동안 금광촌으로 부흥을 이어오다가 1970년 금광은 고갈되고 진과스와 지우펀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대만 정부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다시 부흥을 맞이한다.

진과스의 음양해 해안은 광물질 성분을 포함한 계곡물이 흘러내려와 황금빛을 내며 장관을 연출한다.
파란 바닷물과 황금빛 광물질 성분이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또한 지하수가 광산지역을 흐르며 독특하게 형성된 진과스 황금 폭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뿐만 아니라 황금 박물관은 진과스의 역사를 시기별로 정리해 놓았으며 220kg의 초대형 황금 금괴도 만날 수 있고 사금 체취 체험도 할 수 있어 여행자들의 단골 방문 코스다.

지우펀은 해안을 마주한 산맥 위에 자리한 산골 마을로 오래전에 아홉 농가만이 살고 있어 ‘지우후(九戶)’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워낙 외진 곳이라 멀리서 장을 봐와야 했는데 필요한 물건을 사온 뒤에 공평하게 아홉 등분한다고 해서 ‘지우펀(九份)’으로 부르던 것이 지명으로 굳어졌다. 1989년 영화 〈비정도시〉의 촬영지로 등장하면서 이곳만의 독특한 건물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지며 해외 각국 여행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저녁이 되면 붉은 노을과 함께 홍등이 하나둘 켜지면서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타이베이는 수도의 북적거리는 도심 풍경을 오롯이 품고 있으면서도 조금 눈길을 돌려 보면 다채로운 감상과 사색에 빠질 수 있게 해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경외심을 갖게 되기도 하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역사의 순환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알찬 감상과 사색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한다. 겨울의 끝자락, 이국적이고도 익숙한 타이베이로 짧고도 강렬한 여행을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