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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찾아온 산재 사고

운수업에서 베테랑으로 일한 한규보 님에게 그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평소처럼 일했고, 어떤 조짐도 없었다.
화물 상하차를 마칠 즈음 현장의 지게차가 갑작스럽게 그의 몸을 덮쳤다. 이미 1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여전히 고통스럽게 남아있다.

한규보 님 “사고 당시에 어떻게 병원에 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눈을 떠보니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있었고 다른 곳도 성하지 않았죠. 바로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긴 치료가 시작됐어요. 왜 하필 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다시 일반 병실로, 얼마나 오래 누워있었는지, 저는 지금도 재활하러 와서 병원 천장을 잘 보지 않아요.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천장을 하염없이 바라봤던 기억이 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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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대전병원이
    보여준 따뜻한 친절과
    치료사님의 열정은
    제 마음속에 큰 용기로
    남았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운동을 쉰 적이 없었다. 체대를 졸업하고 근대 5종 경기를 취미로 이어가던 그였으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험은 그때가 난생처음이었다. 그만큼 좌절감도 컸다. 고통스러워하는 한규보 님의 곁을 지킨 건 마음 착한 아들과 어머니였다.

한규보 님 “평생에 걸친 재활이 숙제로 남았기에 오히려 힘들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상처를 받는 순간도 있었어요. 마음이 한창 힘들 즈음 누군가의 권유로 대전병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2019년이었는데,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병원을 옮긴 적이 없어요. 사실은 제가 다녀본 재활의학과 중 대전병원이 제일 힘들어요. 적당히 시간 채우고 끝낼 수도 있는데 저만 보면 운동해야 한다고 자꾸 잡아 이끄시거든요.”

척수손상으로 인한 하지마비와 손의 변형도 재활의 숙제였지만, 한규보 님을 처음 만나던 당시 이동원 작업치료사는 무엇보다 그의 마음의 그늘이 신경 쓰였다. 높은 우울감을 갖고 있고 말수도 적던 그였기에 묵묵히 곁을 지키며 필요한 재활을 함께 해 나갔다.

이동원 작업치료사 “대전병원에 오셨을 때는 이미 만성화 단계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남아있는 신체 기능을 잘 활용해서 독립적인 일상을 누리실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상지 근력 운동을 집중적으로 이어나갔고요. 엄지손가락 변형으로 물건을 잡기 어려운 상태여서 상지 보조기(스플린트)를 지원해 드렸습니다.”

함께 시작한 내일을 향한 동행

상지 보조기는 손에 끼우는 정형외과 도구로 손가락에 끼워 몸의 특정 부분을 고정해 더 이상의 기형을 예방하고 상실된 운동 기능을 대체하는 장비다. 주로 손가락이나 손목 골절환자에게 사용하며 환자의 재활 범위에 맞춰 치료실에서 자체 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랜 시간의 불편이 점차 나아지는 경험을 통해 한규보 님의 얼굴에도 조금씩 그늘이 걷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씩씩하고 똑똑한 아들, 그리고 늘 걱정이 많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힘을 내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한규보 님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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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보 님 “사고가 난 후 바깥에 나오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그리고도 마음이 잡히지 않았는데 어느 날 다른 중증 장애인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게 됐죠. 나라도 힘을 내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고 힘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음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제가 언제까지 절망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이를 악물고 재활 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지금도 재활 운동 밴드로 500개씩 동작을 연습해요. 수영도 시작했고요. 마침 CRPS가 발병한 상황이라 쉽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온수 수영장을 알려주셔서 이제는 하체를 사용하는 선수들보다 더 빠른 기록을 달성하게 됐어요.”

대전병원에서도 꾸준한 근력운동을 지원하며 그의 재활을 도왔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앙상하게 마른 그의 몸에 단단한 근육이 자리 잡혔다. 통증으로 오랜 운동이 어려운 그를 위해 운동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고 늘 웃으며 용기를 불어넣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말수가 적던 그가 수영을 시작했다며, 휴대전화로 찍은 영상을 보여주던 그때가 이동원 작업치료사에게는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동원 작업치료사 “산재 사고 후 재활 치료는 결코 짧게 끝나는 여정이 아닙니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이 넘도록 긴 재활을 이어가야 하지요.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기에 많은 산재환자분들이 절망에 빠지시고요.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동기부여입니다. 어떤 산재사고로 자리를 절단한 환자 분은 아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의족을 차고 매일 운동장에 나서죠. 한규보 님처럼 가족에게 힘이 되고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동기가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환자가 의지를 가질 때 작업치료사로서 뿌듯하고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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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메달을 향한 또 다른 여정

지난해 처음 수영을 시작한 한규보 님은 2023 전남 광양 전국장애인수영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도 충북 지역 대표단으로 참가해 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충북도장애인체육회는 2023년 충북장애인체육상을 열고 그에게 신인선수상을 수여했다. ‘빛나는 신인’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에게 이처럼 잘 어울리는 명예가 어디 있을까? 아들에게는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로, 장애인 수영계에는 반짝이는 신예 스타로 그의 투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한규보 님 “지금도 매일 CRPS로 인한 통증과 싸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매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요. 하지만 대전병원이 보여준 따뜻한 친절과 치료사님의 열정은 제 마음속에 큰 용기로 남았습니다. 많은 산재환자에게 치료 종결은 숙원인 동시에 막막함으로 다가옵니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아버지로서 모습을 잃지 않으려고 해요. 2024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파리 패럴림픽까지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아주 많습니다. 지금까지의 여정을 함께해 준 이동원 치료사님을 비롯 대전병원 의료진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이 긴 재활의 길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이동원 작업치료사 “많은 분들이 아직도 산재 사고로 아파하고,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계십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분도 많으시죠. 한규보 님은 산재환자들의 이런 질문들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주신 분이기에 의미가 깊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보람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많이 배웠고요. 치료사로서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해 적시에 필요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사명감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산재환자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긴 재활 과정이지만 저희 근로복지공단 병원과 함께 묵묵히 노력한다면 분명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성실한 작업치료사로서 제가 그 여정을 함께하겠습니다.”

  • “근로복지공단 병원과
    함께 묵묵히 노력한다면
    분명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날이 오리라
    확신합니다. 성실한
    작업치료사로서 제가
    그 여정을 함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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