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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이지 않는 마음, 시수

핀란드 사람들은 ‘시수(Sisu)’라고 불리는 정신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다. 풀이하자면 어려움에 맞서는 용기와 포기하지 않는 끈기로 해석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꺾이지 않는 마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핀란드는 과거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겨울의 긴 추위와 다량의 눈은 혹독한 환경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핀란드는 현재 세계적인 교육 강국이자 행복한 지수가 높은 국가로 손꼽힌다. 이와 같은 눈부신 오늘은 바로 그들의 정신적 유산에서 기인한다.
핀란드의 기업 문화도 시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핀란드의 기업에선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게임 ‘플래시 오브 클랜’의 개발사 슈퍼셀은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오히려 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리는 행사를 마련한다고 한다. 실수와 실패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격려해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끈다. 더불어 도전과 혁신에도 적극적이다. 핀란드는 인구 대비 스타트업의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4,000여 개의 스타트업이 헬싱키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핀란드의 기업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기업의 한 사람 한 사람은 수평적이고 상호 협력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 리더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가진 한 사람일 뿐, 우월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더불어 남자와 여자, 워킹맘과 워킹대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통해 일하는 사람들 간의 조화를 이룬다. 오후 4시가 되면 퇴근을 서두르고 월요일에도 스트레스가 없는, 핀란드에서의 노동은 삶의 한 부분으로 가족, 일상, 여가와 함께 공존한다.

핀란드 노동시간

연간 1518시간(2021년 기준)
보통 하루 8시간
5일 근무

- 여성과 남성의 ‘가사·임금 노동시간’ 동일

- 핀란드 통계청 조사, 1987년부터 2021년까지 기준

- 2020년 이전에는 여성의 임금 노동시간은 남성보다 짧으나 가사 노동시간은 길었음

- 2020년부터 남성의 가사 노동시간이 늘고 임금 노동시간이 줄어들면서 변화를 맞이함

- 특히 남성의 육아 참여가 증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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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 | 대형 암석을 깎아 만든 독특한 구조의 교회로 자연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음

있는 그대로, 사는 그대로의 헬싱키

헬싱키의 다양한 볼거리 중에서도 있는 그대로, 사는 그대로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가장 먼저 추천할 곳은 일명 ‘암석 교회’라 불리는 템펠리아우키오 교회(Temppeliaukio Church)다. 1961년 교회 건 공모전에 티모 수오말라이넨과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도심에는 교회를 지을 수가 없다는 규정을 새롭게 해석해 쓸모없이 방치된 바위 언덕에 자연 친화적인 건을 시도한다는 것. 1969년 드디어 세상에 첫선을 보인 이 교회는 외관만 보면 마치 거대한 돌무덤 같아 보인다. 그런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내부의 암석은 고스란히 보존한 가운데 천장과 외벽 사이의 창을 통해 외부의 빛을 고스란히 들여놓았다. 화려한 벽화나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자연 그 자체만으로 신비롭고 경이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100년 넘는 역사와 전통의 하카니에미 시장(Hakaniemi Market)도 헬싱키의 변치 않는 일상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 시장 덕분에 헬싱키 가정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진다. 지난 5월에 새 단장을 마치고 깔끔하게 다시 문을 열어 많은 이들을 보다 편안하게 맞이한다. 과일과 채소, 육류와 생선, 잡화 등 먹고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우리에겐 낯선 순록 고기나 청어 절임이 이국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핀란드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식재료라니 도전 정신을 발휘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시장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에스플라나디 공원(The Esplanade Park)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1831년 문을 연 이 공원은 헬싱키 사람들의 대표적인 휴식 공간이다. 공원 가운데에는 핀란드의 민족시인 요한 루네베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발트해의 처녀’라고 불리는 하비스 아만다 분수와 동상도 자리한다. 잔디밭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헬싱키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주말이 되면 음악회나 패션쇼가 열려 특별함을 더한다.

  • 핀란드의 특징적인 노동제도

    육아기 유연근로제

    - 자녀가 만 13세가 될 때까지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음

    - 노동시간의 80%만 일하고 20%를 어떻게 단축할지 고용주와 협의를 통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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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플라나디 공원(The Esplanade Park) |
    산책과 피크닉을 하기 좋은 도심 속에서 만나는 푸르른 휴식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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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렉스 미술관(Amos Rex Museum)

절제된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

헬싱키의 특별한 점 또 한 가지는 바로 디자인이다. ‘세계 디자인 수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을 만큼 이곳 사람들의 디자인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헬싱키에 온 만큼 알바 알토의 발자취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먼저 그와 그의 가족들이 실제로 살았던 ‘알토 하우스(Aalto House)’를 가보자. 침실, 거실, 주방, 작업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알바 알토는 가구 브랜드 아르텍을 만든 주인공으로 집안 곳곳에 아르텍의 엔틱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알토 하우스에서 5분 거리에는 ‘스튜디오 알토(Studio Aalto)’가 자리한다. 1950년대 만들어진 건물로 그의 최고 명작으로 꼽힌다. 현재는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으로 사용 중이며 알토 하우스와 스튜디오 알토는 모두 가이드 투어를 통해서만 방문할 수 있다. 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Helsinki Design Museum)’도 방문할 만하다. 핀란드 디자인의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미리 만날 수 있다. 또한 아모스 렉스 미술관(Amos Rex Museum)은 우주 비행선 같은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끈다. 오래된 광장과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지하에 전시실을 마련했기 때문. 뿐만 아니라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Museum of Contemporary Art Kiasma)도 디자인 마니아들의 필수 코스로 꼽힌다.
이제 헬싱키 여행의 마무리로 접어들어 사우나에 방문해 여행의 피로를 풀어보길 추천한다. 물론 핀란드의 사우나는 한국과는 다르다. 건식 사우나로 불이나 전기로 뜨겁게 데운 돌에 물을 부어 수증기를 통해 실내 온도를 뜨겁게 유지하는 방식이다. 코티하르윤 사우나(Kotiharjun Sauna)는 1928년부터 지금까지 헬싱키 사람들의 피로 회복을 담당하고 있다. 장작을 이용해 열기를 만드는 전통 방식도 지금까지 유지된다.
헬싱키는 다채로운 매력으로 여행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곳곳의 인상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붙들고 맑은 하늘과 푸르른 숲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 이곳에선 한 박자 천천히 삶이 흘러간다. 속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롭고 한적한 도시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느리게 그리고 편안하게 헬싱키의 하루를 만끽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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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렉스 미술관(Amos Rex Museum) | 미술관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