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걷는 여행 사진1

강경에서 가장 높은 옥녀봉에서 내려다 본 강경읍내

강경, 시간 여행자를 위한 곳

2009년에 영화로도 개봉한 <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판타지 로맨스 소설이다. ‘시간여행’이라는 초현실적 상상력은 인간이 설정해 놓은 시간적 개념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어린 자신을 마주하는가 하면,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현재를 망각하기도 한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을 여행할 때도 그런 느낌에 빠져든다.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를 걷다 보면 과거의 어느 한순간이 뇌리에 스치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면 현재의 시간을 마주한다. 옛것과 현재 것이 조우하는 강경은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적 개념이 무색한 소읍이다.
강경은 충청남도 논산시에 속한 작은 읍이지만, 지리적 위치 덕분에 한때 충남과 전북을 잇는 물류의 중심지였다. 강경의 위치적 우월감은 상당했다. 강경과 인접은 금강은 내륙 깊숙이 배가 드나드는 관문이었으며, 그 물길을 따라 바다와 육지의 산물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했다. 한창 호황을 누리던 때에는 하루에 오가는 배가 100여 척 이상이었다고 한다. 그 덕에 강경시장은 구한말 평양시장, 대구시장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꼽혔다.
1896년 일본 상인 1명이 강경에 발을 디딘 이후 그 숫자가 급속하게 늘어나 1928년에 이르자 일본인이 1,579명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은 주로 강경의 중심 상권을 장악했고, 생활 터전 또한 넓혀갔다. 일본인들이 점점 늘어나자 강경은 충청남도에서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오고, 호남지방에서 가장 먼저 현대식 극장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판도가 바뀌었다. 철도가 급성장하자 금강의 수로(水路)를 이용하던 강경의 물류 유통망은 쇠락해 갔다. 해방 이후 미곡 반출이 중단된 것도 한 몫 했다.
급기야 1990년 금강하굿둑이 완공되면서 금강은 수송과 어업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강경은 옛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모습으로 쇠락했지만, 강경읍내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과거의 명성과 마주한다. 강경역사문화관에는 그 흔적들이 모여 있다. 국보급 유물이나 보물은 없지만, 강경 사람들의 손때 묻은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남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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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건물이었으나 1층만 남아 있는 옛 노동조합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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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를 재현해 놓은 1950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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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포구의 겨울풍경

30년 전만 하더라도 웬만한 가정집에 한 대씩 있었던 곤로(풍로), 먼지와 기름이 뒤범벅된 미싱, 꿀벌 캐릭터가 그려진 양은도시락, 일제강점기에 사용하던 금고와 저울 등 일상의 소품들이 과거로 안내한다. 강경역사문화관은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이다. 19세기 말부터 조선 최대의 상업 도시로 성장한 강경은 그 위상에 걸맞게 1911년에 한일은행 지점이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사람과 돈이 모이다 보니 문제도 많았다. 일본인들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기 위해 1925년 노동조합이 결성됐는데 조합원이 많을 때는 2~3,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당시 강경에 거주하는 조선인 중에서 어업 관련 노동자 대부분이 가입한 셈이다. 노동조합건물은 건축 당시 2층 기와집이었으나 지금 남은 것은 1층뿐이다.
강상고등학교의 전신은 강경공립상업학교다. 한때 부산상고, 선린상고, 경북상고 등과 함께 명문 상고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다. 학교 정문 왼쪽에 일제강점기에 지은 옛 교장 관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붕에는 기와를 올렸고 벽체는 붉은 벽돌로 마감했다. 지붕의 곡선은 한옥의 완만한 선과 일본의 급경사면이 섞여 있다. 처마는 일본식 겹처마 양식을 따랐다.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과거를 되짚어 볼 수 있는 건물이다.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강경읍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근대식 교육기관이다. 1937년 준공 이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공간 모두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셈이다.
골목길에 자리한 옛 남일당 한약방 건물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를 사는 도시인의 눈에 이곳이 골목길로 보이지만 당시에는 신작로였으며 번화했을 중심가였을 것이다. 남일당은 ‘남쪽에서 일 큰 한약방’이란 뜻으로 1920년대까지만 해도 충남과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개인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TIP 시간 여유가 있다면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명재고택을 챙겨보자.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한 이 고택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 선생의 가옥으로 그의 호를 따서 명재고택이라 부른다. 대문도 담장도 없이 전면이 개방된 사랑채와 그 뒤로 안채가 있다. 사랑채 오른쪽 언덕에 오르면 질서정연하게 놓인 장독과 노거수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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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읍내에 구한말 강경 거리를 재현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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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개화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경성 거리

과거의 주인공이 되다. 미스터 션샤인

“수나 놓으면서 꽃으로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조선 속 사대부 여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시청률 18%를 웃돌며 장안의 화제였던 <미스터 션샤인> 속 대사이다. 이병헌, 김태리 주연의 이 드라마는 일제강점기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았던 그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불꽃처럼 타올랐던 사람들의 감동 러브스토리이다. 이 드라마는 국내 최초 민관 합작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종영 후에도 세트장이 테마파크로 남았다. 논산 연무읍에 자리한 션샤인랜드는 개화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세트장인 선샤인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다른 곳에 비해 매우 세련되고 정교한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어 복고의 성지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이것이 실존하는 강경과 함께 비록 드라마 세트장이지만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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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엔티크하게 연출된 글로리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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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인 유진초이와 고애신

선샤인 스튜디오 들어가는 입구부터 드라마의 분위기는 그대로 전해진다. 드라마 속 캐릭터에 푹 빠져보고 싶다면 안내 지도를 받아서 먼저 양품점을 방문해보자. 이곳은 드라마 속 인물들이 입었던 의상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고풍스러운 개화기 복식을 빌려준다. 특히 주말에는 개화기 복식을 갖춰 입고 온 사람들이 가득해서 분위기가 한껏 들뜬다. 양장으로 멋을 부리고 제일 처음 가볼 만한 곳은 극 중 인물들이 모두 한 곳에 모였던 글로리 호텔이다. 세트장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있어 눈에 띈다. 드라마에서 화려하게 엔티크하게 연출되었던 호텔은 여전히 낭만적이고 고풍스럽다. 게다가 주인공들이 커피를 마시던 호텔 로비가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유진 초이(이병헌 분)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자리도 고스란히 남아있어 인생 사진 명소로 인기다. 곳곳에 작품에 나왔던 소품과 하이라이트 영상을 소개해 놓아서 볼거리가 많다.
호텔을 나오면 아치 모양의 홍예교 다리 아래로 전차가 다니는 종로 거리가 한눈에 펼쳐진다. 촬영용으로 지은 임시 건물이 아니라 테마파크를 염두에 두고 지은 시설이라 완성도가 높다. 종로 거리로 내려가기 전 불란셔 제빵소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애신이 무지개떡처럼 생긴 카스텔라를 처음 맛보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제빵소를 지나 왼쪽으로 가면 남자 주인공들이 모여 잔술을 들이켜던 일본식 선술집이 나온다. 내부에는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드라마의 여운이 전해지는 듯하다. 술집을 나와 조금 걷다 보면 눈에 띄는 붉은 벽돌 건물을 마주한다.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 건물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빛, 그리고 감성,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 굿바이 미스터 션샤인” 사진전을 상설 전시 중이다. 그 외에도 애신의 방을 재현한 ‘마당집’과 개화기 상점을 재현한 ‘문방구’ 등지에서 각종 기획전시를 진행 중이다. 션샤인랜드에는 드라마 촬영장인 션샤인 스튜디오 외에도 한국 전쟁 이후 1950년대를 재현해 놓은 1950 스튜디오, 밀리터리 체험과 서바이벌 체험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눈으로만 보는 전시관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직접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