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 제갈대현 작업치료사와 윤병천 님
사고와 함께 찾아온 마음의 그늘
윤병천 님은 누구보다 쾌활한 사람이다. 특유의 툭툭 던지는 농담과 서글서글한 성격, 한평생 이어온 성실함이 주변의 호감을 샀다. 건설회사에서 정년을 맞이했지만, 다시 공장에서 기계 정비 일을 시작했다. 잠시도 쉬지 않는 바지런한 성격 때문이었다. 새로 얻은 직장에서도 동료와 사업주의 호감을 두루 얻으며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크레인이 1톤가량의 물건을 들어 올리다 사고가 일어났다. 엄청난 무게가 윤병천 님의 왼쪽 손가락을 덮쳤고 정신없는 나날이 쏜살같이 흐르기 시작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갔는데 손을 너무 심하게 다쳐 치료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수부전문병원에 가서 바로 수술을 했죠. 두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은 접합을 했는데, 세 번째 손가락은 절단된 상황이었어요. 일단 급한 처치만 한 터라 피부이식이나 장기 치료가 불가피하다고 하더라고요. 평생 바쁘게 일만 하며 살았는데, 손가락을 쓰지 못하게 되니 내 인생이 무슨 쓸모가 있나 싶었어요. 어떤 위로도 마음에 와닿지 않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산재사고를 겪은 후 많은 근로자가 상실감과 절망감에 고통받는다. 평생 바쁘게 일만 하다 갑자기 병원에 누워 있으니 매일이 괴로움뿐이었다고 윤병천 님은 말했다. 본격적인 요양을 위해 태백병원을 찾았던 당시의 그를 제갈대현 작업치료사와 동료들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절단된 손가락에 대한 상실감이 큰 상태였어요. 손가락 감각이 둔해져 장기 치료가 필요했는데, 일단은 너무 우울해하셔서 심리적 안정이 급선무였죠. 움직임 치료로 남아있는 손가락의 근력을 키우고, 예민해진 피부의 통증을 감소하는 탈감각화 훈련도 필요했고요."
힘든 상황이었지만 윤병천 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병원을 찾아 재활을 이어갔다. 코로나19로 병원을 오가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매일 일하며 쌓아온 성실함이 그의 발길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찾은 치료실이었지만, 매일 만나는 치료사와 의료진의 반가운 인사와 격려에 그의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태백병원 재활치료실은 호흡재활 및 열전기, 물리치료, 작업치료나 사회사업 등 다양한 치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강원권에서 손꼽히는 재활 인프라와 전문 인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환자 개개인 특성에 맞는 치료를 제공하며, 관계 형성도 잘 되어 있고요. 호흡재활치료 기구를 비롯한 다양한 근력운동 기구가 마련되어 있어 남는 시간에 개인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희망을 찾을 때까지, 가까이
태백병원의 환자와 의료진은 동네 이웃이자 매일 만나는 가까운 친구다. 제갈대현 작업치료사와 윤병천 님 역시 같은 헬스장을 다니며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 산재를 겪은 다른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의료진의 응원과 조언을 받으며 윤병천 님의 마음속에 그동안 느끼지 못한 여유가 조금씩 스미기 시작했다.
"태백병원 의료진의 정신적 지지가 없었다면 치료를 다 끝내지 못했을 거예요. 우울한 감정이 해소되면서 조금씩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곁에서 묵묵히 버텨준 아내에게도 고마웠고요. 특히 제갈대현 선생님이 옆에서 운동하는 방법을 정말 적극적으로 알려주셔서 치료실과 헬스장을 오가며 마음과 몸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 정말 우울하고 말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젊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다시 활기차게 지내고 있네요."
기본적인 근력과 움직임 개선을 위한 수부치료를 비롯해 일상생활 훈련도 이어졌다. 치료 초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손가락을 사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이었다. 남은 손가락 기능을 통해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지지하는 움직임부터 익혀 나갔다. 평소 장을 보러 가기 불편해하는 윤병천 님을 위해 일상생활집중훈련의 일환으로 애플리케이션 사용부터 인터넷 쇼핑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드렸다. 스마트폰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물건 사는 재미에 푹 빠져보기도 하며 윤병천 님은 조금씩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윤병천 님은 이제 한 손으로 가능한 활동은 오른손으로 모두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작년 처음 병원에 내원하셨을 때보다 왼쪽 손가락의 움직임과 근력이 개선된 상태이며, 올해 두번째 손가락 관절 부분의 회복을 위한 수술을 앞두고 계시고요. 곁에서 새로운 것들에 대해 알려드리던 과정이 기억에 남는데요. 처음 인터넷 쇼핑몰에 가입하고 배송지를 입력하고, 물건의 장단점을 고민하며 실내자전거를 구입하던 과정이 다소 길었지만 지금은 편하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산재사고 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오히려 끝도 없는 절망이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과 고통을 이겨낸 사람만이 겪을 수 있는 마음이다. 평생 바쁘게만 살아왔던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뭘하며 지내는지에 관심이 많다. 인터넷 쇼핑처럼 그동안은 모르고 살아왔던 재미를 하나씩 익히며 새로운 시작을 만끽하려 한다.
"환자가 회복되어 종종 병원에 인사하러 오시곤 합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셨던 분이, 보호자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끼죠. 환자의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작업치료사로서 참 감사하기도 하고요. 수부치료 전문 작업치료사는 아직 국내에서는 교육 활성화가 부족한 실정인데, 근로복지공단에서 전문 치료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매일 더 성장하고 있습니다."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고가 찾아오기도 하더라고요. 쉽지 않겠지만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에 마음을 맡기길 바랍니다. 좌절하지 말고 치료를 잘 받다 보면 반드시 상황은 나아질 테니까요. 아직은 손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주어진 상황 내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며 내일 더 행복해지겠습니다. 모두 힘내길 바랍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뒤로하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윤병천 님의 앞날에 태백병원 의료진의 든든한 동행이 오래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