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우정
아직은 늦겨울의 찬 바람이 가시지 않은 2월, 퇴근 후 귀갓길도 마다한 두 사람이 찾은 곳은 울산의 한 가죽공방이다. 체험 며칠 전부터 뭔가 특별한 하루를 만들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 손재주가 좋고 호기심이 많은 김보라 과장이 먼저 가죽 체험을 제안했다. 뭘 만드는 일엔 영 소질이 없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는 데는 거리낌이 없는 한지원 과장도 기꺼이 응했다.
김보라 과장 처음엔 가방을 만들어볼까 생각도 했어요. 이왕 만드는 거 제법 그럴듯한 걸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평소 퀼트를 취미로 바느질에 자신도 있었고요. 하지만 선생님의 만류와 이상과 현실 간 타협을 거쳐 지갑으로 골랐습니다.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노란색 가죽으로 만들어 개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잡으려고요.
저녁식사도 거르고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다행히 체험 전 가죽 소재와 디자인을 골라 두었기에 재단과 칠, 바느질 과정이 남았다. 하지만 이 마저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부드럽게 가공된 소가죽을 잘 잘라준다. 자르는 면이 깔끔하지 않으면 재봉 후에도 삐뚤삐뚤 보기 좋지 않기 때문에 시작부터 신중해야 한다. 오늘 고른 가죽은 부드러운 오플 소가죽. 오플은 주름진 가죽이지만 기존 가죽처럼 수축시켜 만들지 않고 표면에 무늬를 찍어 주름을 만든 가죽을 말한다. 명품에도 자주 쓰이는 소재로 미끄럽지 않고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일품. 한지원 과장은 실용성을 생각해 부드러운 브라운 컬러를 선택했다.
한지원 과장 워낙 손재주가 없긴 하지만 막상 해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네요. 지난해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온 후 한동안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는데, 이렇게 잡생각 없이 집중하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져요.
이심전심,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동료로
한지원 과장이 복지계획부로 발령 난 건 지난해 7월. 업무의 변화도, 살고 있는 터전을 옮기는 일도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복지계획부에서 뜻밖의 고마운 동료를 만났다. 바로 본사에 8년째 근무 중인 김보라 과장이다. 한지원 과장이 새로 맡게 된 업무 대부분은 기존에 김보라 과장이 담당하고 있었기에, 궁금한 점이 많아 몇 번이나 질문을 던졌지만 그때마다 싫은 내색 없이 늘 반갑게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지원 과장 김보라 과장님은 정말 야무진 성격이에요. 가끔은 언니 같아요. 자주 도시락을 싸서 동료와 나눠 먹을 만큼 주변에 베풀고 챙기는데 익숙한 사람이죠. 저절로 의지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성격은 저와 얼마나 비슷한 지. 일부터 회사 밖의 일상까지 모두 공유할 정도로 단짝이 되었어요.
만난 지 8개월이 아닌 8년은 되어 보인다는 말을 건네자 평소에도 자주 듣는다며 두 사람이 웃어 보였다. 재잘재잘 수다를 나누는 사이 재단이 끝나고, 이제 재단 면 보호를 위해 마감재(CMC)를 바를 차례. 겹겹이 바르지 말고 살살 두드려주라는 강사의 가르침에 두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집중하기 시작한다.
김보라 과장 한지원 과장님은 주변을 참 잘 도와주는 성격이에요. 저희 부서에 서로 겹치는 업무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죠. 제가 가끔 어려운 부탁을 할 때도 있는데 늘 힘이 되어줍니다. 또 평소에 성격이 정말 잘 맞는 편이라 만난 지 8개월 만에 서로 속이야기를 다 털어놓는 친구가 되었어요.
점심시간마다 김보라 과장이 준비한 도시락을 나눠 먹고 나서 본사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는 일과가 매일의 즐거움이라며 두 사람이 입을 모았다. 김보라 과장이 직접 개발한 수많은 산책코스를 함께 걷고 또 걸어도 이야깃거리는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즐거운 수다가 이어지는 사이 마감재가 다 마르고 시간은 어느덧 여덟 시를 훌쩍 넘겼다. 아직 바느질은 시작도 못해 고민하던 두 사람이 결국, 손바느질 대신 재봉틀을 활용하기로 했다. 재봉틀 역시 제법 힘이 들어가는 작업. 손바느질보다 정교하고 촘촘해 더 오래 쓸 수 있으며 실용적이다.
김보라 과장 평소 손으로 무언가 뚝딱뚝딱 만드는 일을 좋아해요. 그래서 오늘 바느질을 직접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네요. 다음번엔 여유를 가지고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생각보다 어렵긴 했지만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오늘 정말 잘 해낸 제 자신에게 칭찬을 보내고 싶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소소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많이 만들며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지원 과장 지갑이 제 걱정보다 잘 만들어져서 신기합니다. 아직 새로 발령받은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요. 올해도 열심히 노력해 안정적으로 적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보라 과장님이 있으니 아마 잘 할 수 있겠죠?
아직 마무리가 끝나지 않은 지갑을 든 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세월이 지나 색이 바라거나 닳아도 오히려 중후한 맛을 자랑하는 가죽지갑처럼, 두 사람의 우정도 시간이 지나며 더 단단하고 부드러워질 테다. 앞으로의 날들에 오늘의 추억이 즐겁고 행복했던 한 땀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