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자부심, 직업을 잃다
대마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미화 씨에게 조리실무사라는 직업은 자부심 그 자체였다.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맛있는 밥을 만들어준다는 것도 즐거웠지만 학교 조리실은 두 아이를 키워내고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직장이었다. 20여 년을 우직하게 근무하며 책임감도 남달랐다. 남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도 항상 먼저 솔선수범 나서며 모범을 보였다.
잊을 수 없는 2019년 6월 29일.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계란을 저을 때 사람이 직접 젓는 경우도 있지만, 규모가 큰 학교에서는 대부분 기계를 사용한다. 그날도 기계로 계란을 젓고 있는데, 분비물이 박미화 씨 눈에 띄었다. 분비물을 살짝 건져내려는 순간, 장갑을 낀 손이 기계에 딸려 들어갔다. 손을 급하게 빼내고 나니 장갑 끝이 잘려 있었다.
“처음에는 놀랐는지 통증도 심하지 않았어요. 손톱 관절 쪽이 긁혔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수술을 하고 보니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가운데 세 손가락이 잘려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당연히 복직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가운데 손가락들을 사용하지 못하니 ‘엄지와 검지를 사용하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양쪽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먹도 쥐어지지 않았고,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너무 심했다. 이후 학교에서도 청소직 전환을 권유받았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직무 전환을 받아들였지만 ‘칼질도 못 하는데 비질, 물걸레질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직장 복귀의 희망을 보다
순천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 건 산업재해보상 종료를 위해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 담당자와 통화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때가 2019년 겨울이었어요. 당시 광산지사의 잡 코디네이터이신 설상준 과장님이 전화를 주셔서 ‘종결을 지어야 하는데 준비는 되셨냐’고 물어보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손이 아픈데 복직을 어떻게 하냐고 발을 동동 굴렀죠. 그 얘기를 듣더니 광산지사로 한번 나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제 사정을 듣더니 순천병원을 연결해 주셨죠.”
그렇게 박미화 씨는 직장복귀지원프로그램 대상자로 12월 20일에 순천병원에 입원해 수부집중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직무 전환을 요구받은 상태였기에 당시에는 청소직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 재활지원부의 이명선 과장을 처음 만난 당시만 해도 그는 원래 직업이었던 조리실무사 복귀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었다. 과일 한 개도 깎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직장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치료하는 내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다.
“처음 병원에 오셨을 때는 하루하루가 눈물 바람이셨어요. 아무래도 손가락이 제 기능을 못 하니 치료 후에도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 불안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상담을 진행하다 보니 원직장 복귀에 대한 의지가 강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직장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직장복귀지원프로그램은 재활치료와 동시에 직업환경을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직장 복귀가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순천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 담당자와 산업위생사, 산재관리간호사가 동행해 직장 환경을 분석했다. 대마초등학교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치료에 있어 더 보강할 것이 있는지 사업주에 해당하는 순천지청장과의 면담을 진행했다.
“청소직과 조리실무사가 일하는 환경을 둘러보고 직무를 소화할 수 있는지 살펴본 결과, 재활치료를 계속 진행할 경우 원직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이를 지청장님께 설명해 드렸죠.”
희망의 손길이 모이다
이날의 면담 이후 갑작스레 박미화 씨의 직장 복귀 날짜가 잡혔다. 다행히도 원직장인 조리실로의 복귀였다. 날짜는 2020년 3월 8일. 재활치료가 더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개학 날짜를 맞춰야 하기에 임의로 날짜를 조정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는 치료 프로그램이 변경되어 과제 중심의 치료가 진행되었다. 깍둑썰기, 십자썰기, 반달썰기 등 특정동작을 소화하기 위해서 자세를 잡고 힘을 주는 방법을 배우고 그대로 연습을 반복했다. 손가락에 힘이 안 들어가니 팔과 몸을 이용해 힘을 주는 방법을 배웠다. 복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연습에 매진했다. 순천병원에서 만난 구내식당 여사님은 박미화 씨가 집에서 과도로 연습한다는 말을 듣고는 부엌칼을 가져와 선물하기도 했다.
“재활치료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고마운 분들을 쉴 새 없이 많이 만났어요. 정말 세상은 나 혼자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는 걸 느꼈죠.”
그렇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대마초등학교의 조리실무사로 다시 일하게 된 박미화 씨. 어느덧 직장에 복귀한 지도 1년이라는 시간이 되어간다. 물론 신체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조리실에서 어렵고 힘이 드는 업무를 도맡아 했던 만큼 무거운 것을 들거나 큰 그릇을 닦는 일 등 소화할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실망하게 될 때도 있었다고.
“함께 일하는 조리실무사 동료들도 그렇고 영양사 선생님도 저를 많이 격려해 주세요. 사실 예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지금은 못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저를 다독여 주세요.”
직장에 복귀해 씩씩하게 생활하는 박미화 씨의 모습에 이명선 과장은 큰 보람을 느끼고는 한다. 산업재해 환자들을 위해 제공하는 원직장 복귀나 직업 능력 개발 등 전문적인 서비스가 결국은 누구에게 ‘제2의 인생’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순천병원에서 직업복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제 몸도 치료되었지만, 마음도 위로를 받았어요. 선생님들이 정말 따뜻하게 마음을 만져 주셨거든요. 순천병원을 알게된 것이 저한테는 정말 행운이었던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산재환자들이 이곳을 알고 찾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처음에는 희망을 버렸었는데 선생님들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직장에 복귀한 뒤에는 동료들의 따뜻함이 용기를 준 것 같아요. 너무 큰 어려움을 겪을 때는 혼자서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용기와 희망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