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동행 일러스트 이미지1

생산현장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

곽성자 씨는 충청남도에 있는 식품회사 제조현장에서 3년여를 근무했다. 네 딸의 엄마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좀 더 안정적인 수입을 얻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언니와 함께 10년 정도 식당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계속 커가니까 학비도 많이 들고, 경제적으로 수입이 더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가래떡으로 만든 식품과 면류를 만드는 곳이지요.”

다양한 식품을 제조하는 회사 안에서도 그의 담당은 생면 생산이었다. 집에서야 손으로 생면을 만들겠지만 대량으로 면발을 뽑아내는 식품공장에서는 기계가 돌아가기 마련. 가루를 집어넣어 반죽을 만드는 과정에서 반죽이 기계에 들러붙기도 하는데, 이때 제조담당자들이 손으로 붙은 반죽을 떼어내기도 한다. 사고 당일에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했다. 그런데 끼고 있던 장갑 끄트머리가 반죽을 위해 돌아가던 기계의 롤에 끼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바로 기계 가동을 중지했지만, 이미 오른손 세 마디를 크게 다친 뒤였다.

행복한동행 일러스트 이미지

“사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닥치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손톱이 약한 편이라 장갑을 끼고 일했거든요. 사고가 나자마자 회사에서 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고 절차를 밟아주셨습니다.”

그때가 2020년 8월 12일. 그날로 수지접합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이어갔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고에 자신감이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다. 트라우마로 잠 못 드는 밤도 이어졌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자녀들을 생각하면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몸을 치료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마음을 케어하는 전문가들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근로복지공단 보령지사에 전화를 걸었다.

마음을 다독여준 심리 상담과 멘토링

산재로 마음이 어려우니 심리상담을 받고 싶다는 요청. 오랜 기간 산재근로자를 만나온 김정혜 과장이지만, 이렇게 근로자가 먼저 연락을 해서 프로그램을 문의해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비슷한 또래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공감대가 더해지니 어쩐지 내 일처럼 마음이 쓰였다는 김정혜 과장. 근로자 스스로 자활 의지를 갖고 있으니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심리상담을 요청하셨는데 가까운 곳에는 전문적인 상담기관이 마땅하지 않았어요. 간혹 있더라도 공단과 협약을 맺지 않아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근로복지공단 대전병원에 연락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으실 수 있도록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저로서도 제가 몸담은 우리 공단의 병원이니 믿음직했고요.”

근로복지공단의 특별진찰 프로그램을 통해 대전병원의 전문적인 심리상담을 받은 곽성자 씨. 7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대전에 가서 상담을 받으면서 차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어느 날에는 30분을 상담하기도 하고, 다른 날에는 한 시간 넘게 상담실에 머무르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사이 사고 후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던 손가락도 차츰 회복해갔다.

“혼자서 힘들어하는 것보다 전문적으로 배운 분들에게 도움을 받아야 좀 더 빠르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서도 산재근로자가 먼저 프로그램 계를 요청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행복한동행 일러스트 이미지

대전병원에서의 특별진찰은 물론,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자신보다 먼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씩씩하게 이겨낸 다른 산재근로자의 이야기는 긴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위로를 주었다.

“멘토 선생님께서 요즘도 종종 연락을 주세요. 저보다 많이 다치셨는데도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직장생활을 굳건하게 해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 역시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김정혜 과장의 관심은 공단 내 프로그램 지원을 넘어 외부 기관의 복지서비스 의뢰로도 이어졌다. 손을 다쳐 물 사용이 쉽지 않은 가운데 곽성자 씨네 싱크대가 고장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련 지원제도를 알아보던 중에 면사무소를 통해 집수리 프로그램을 연계하게 된 것이다.

“겨울철이라 물에 손을 더 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일회용 숟가락을 사 놓고 겨우 식사를 하고는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싱크대가 막혀서 물이 내려가지 않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조금 불편해도 감당할 수 있던 일이었는데, 손을 다쳐서인지 사소한 것도 크게 다가오는 기분이었어요. 속상한 마음에 과장님께 하소연했는데, 면사무소에 제 상황을 설명해주시고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의뢰해주셨습니다. 요즘은 마치 새집에서 사는 기분이에요.”

행복한동행 일러스트 이미지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다

이처럼 다양한 지원으로 몸은 물론 마음과 생활까지 든든하게 회복한 곽성자 씨는 지난 9월부터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 다시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종종 장애인들이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멋지게 도전하는 영상을 찾아봐요. 의식을 잃고 몇 년 동안 뇌사상태에 있던 사람이 부모의 사랑과 믿음으로 기적적으로 깨어나 수영도 하고 나중에는 걷기도 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긍정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 새삼 깨달았어요. 사고가 났을 때 불행감에 빠져 있으면 끝도 없이 가라앉겠지만, 지금은 손이 좀 시릴 뿐 마음의 열정은 더 뜨거워졌어요.”

씩씩하게 직장으로 복귀해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곽성자 씨를 보면서 김정혜 과장도 담당자로서 느끼는 보람이 크다. 곽성자 씨와 김정혜 과장의 이야기는 지난 2021년 재활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일반서비스 부문 은상을 받기도 했다. 산재를 입고 1년 동안 재활과 회복에 전념하면서 곽성자 씨는 인생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공단을 통해서 우리집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돌아보면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주변에서 마음을 많이 써 주셨던 것 같아요. 세상이 아직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좋은 분을 많이 만난 저 자신이 행운아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언젠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에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