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불심을 담은 오래된 유적

방콕은 겨울이면 더 설레는 여행지다. 영하의 날씨로 한껏 두꺼워진 외투에 온몸을 꽁꽁 싸매고 다니다 보면 가벼운 옷차림이 너무도 그리워지는데, 방콕의 12월은 여전히 한여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때는 건기라 덥지만 습하진 않다. 한낮엔 햇볕이 조금 따가울지 몰라도 끈적이진 않는 것. 그야말로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방콕 구석구석 돌아다니기에 이보다 더 알맞은 시기는 없을 터.
가장 먼저 발길이 향하는 곳은 바로 사원이다. 태국은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대표적인 불교국가다. 국교로 불교를 지정하고 있진 않지만 국왕은 반드시 불자여야 하고 태국의 성인 남자는 일생에 한 번은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태국 곳곳에는 불교사원이 다수 자리하고 있다.
왓 프라깨우(Wat Phra Kaew)는 왕실 수호 사원으로 왕궁(The Grand Palace) 안에 자리하고 있다. 에메랄드 불상이 있어 ‘에메랄드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태국에서 가장 신성한 불상으로 꼽히는 이 에메랄드 불상은 높이 약 66cm, 폭 48.3cm 크기로 가부좌를 튼 모습인데, 1년에 세 번 태국 국왕이 직접 옷을 갈아입히는 의식을 거행한다. 3월, 7월, 11월에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해의 풍년과 나라의 안정을 빌기 위함이다. 사원 회랑 벽면에는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의 주요 장면을 태국 화풍으로 그린 178개의 벽화도 만날 수 있다.

왓 프라깨우 Wat Phra Kaew
주소 Na Phra Lan Road Phra Borom Maha Rajawang, Phra Nakhon, Bangkok 10200 Thailand
이용 시간 오전 8시 30분~3시 30분 홈페이지 www.royalgrandpalace.th

사실 이 사원을 소개할 때는 태국 왕조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태국은 1782년부터 짜끄리 왕조가 통치하고 있는데 라마 1세를 시작으로 현재 라마 10세가 즉위하고 있다. 왓 프라깨우가 위치한 왕궁은 바로 국왕의 공식 관저이자 집무실이고, 그래서 왓 프라깨우와 왕궁은 함께 둘러보는 태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꼽힌다. 이곳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태국인의 불교에 대한 사랑과 왕실을 향한 존경심과 애정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이곳에서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왕코르 왓(Angkor Wat) 모형도 발견할 수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서로 침략하고 침략당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사실을 입증하듯 왕코르 왓 모형이 한가운데 자리한다. 또한 왕궁 중앙의 짜끄리 마하 프라삿(Chakri Maha Prasat)이라는 건축물도 눈길을 끈다. 1882년 라마 5세가 짜끄리 왕조 10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것으로 지붕을 뺀 모든 부분이 유럽 건축 양식을 띄고 있다. 그래서 ‘태국 모자를 쓴 서양인(Westerner with a Thai Hat)’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 건축물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국은 19세기 유럽 제국주의가 전파되면서 그 영향을 받았으나 태국만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고, 그 결과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식민 지배를 받았으나 태국은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했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을 이해하면 방콕의 유서 깊은 지역을 방문할 때 한층 더 깊고 넓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힘이 길러진다.
왓 아룬(Wat Arun)과 왓 포(Wat Pho)도 방콕의 사원을 추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왓 아룬 Wat Arun
주소 158 Thanon Wang Doem, Bangkok 10600 Thailand
이용 시간 오전 8시~오후 6시
전화번호 +66-2-891-2185

태국어 ‘왓(Wat)’은 사원을 뜻하는 말로 태국 여행 중에 지도에서 이 단어를 발견하면 사원이라 여기면 된다. 왓 아룬은 크메르 스타일, 다시 말해 802년부터 1431년까지 629년 동안 캄보디아에 존재했던 제국으로부터 그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크메르 왕국은 1350년에 태국에 세워졌던 아유타야 왕국에 의해 멸망하게 되었는데 왓 아룬은 그 격동의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우뚝 솟은 탑과 주변을 둘러싼 네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우뚝 솟은 탑인 프라 쁘랑(Phra Prang)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간까지만 오픈되어 있다. 정교하게 장식된 탑을 살펴보다 보면 태국인들의 종교에 대한 신실함과 간절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왓 아룬은 ‘새벽 사원’이란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모습이 특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사원을 직접 방문해서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난 후에는 짜오프라야강 주변에서 배를 타고 사원 전경을 멀리서 조망하길 권한다. 일출이나 일몰 시기를 잘 맞춘다면 방콕에서의 잊지 못한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왓 포는 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불교사원 중의 하나다. 누워 있는 불상인 와불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길이 46m, 높이 15m에 달하는 이 불상은 열반에 든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발바닥에는 108개의 불교 세계관을 나타내는 문양과 상징들이 자개로 새겨져 있다. 이 사원 안에는 태국 전통 마사지를 경험할 수 있는 왓 포 태국 전통 마사지 학교도 자리하고 있어 미리 예약하고 이용할 수도 있다.

왓 포 Wat Pho
주소 2 Sanamchai Road Grand Palace Subdistrict, Pranakorn District, Bangkok 10200 Thailand
이용 시간 오전 8시~오후 6시 30분
전화번호 +66-83-057-7100

물의 도시에서 만나는 특별한 시간

방콕은 물의 도시다. 방콕의 중심을 짜오프라야강(Chao Phrya River)이 관통하고 있으며 작은 물줄기가 도심 전체에 걸쳐 뻗어 있다. 그래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방콕 전철 중에 지상철인 BTS(Bangkok Transit System)는 1999년에 개통했지만, 지하철인 MRT(Mass Rapid Transit)는 2004년에 개통했다. 그 이유는 바로 짜오프라야강 때문이다. 강의 지류가 도시 전체에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 지하철을 설치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태국의 전통적인 축제인 송크란(Songkran)도 물과 연관이 깊다. 태국의 설날인 이때 사람들은 서로 물을 뿌리며 축복을 나눈다. 짜오프라야강은 태국인과 오랜 시간 함께해 왔기 때문에 이곳을 중심으로 생활이 꾸려지고 일터가 생겨났다. 방콕에서 만날 수 있는 수상가옥이나 수상시장도 짜오프라야강과 맞닿아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형성된 삶의 모습일 터.
끌롱 랏마욤 수상시장(Khlong Lat Mayom Floating Market)은 방콕 시내에 자리한 수상시장으로 주말에만 운영이 된다. 여행자들의 경우에는 투어를 예약해서 이용할 수 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작은 배에선 꽃과 식물,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한다. 파는 물건 자체는 특이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오가는 배가 스치며 지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물건을 흥정하고 거래하는 자체가 이색적이다. 또한 수로를 따라 늘어선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끌롱 랏마욤 수상시장 Khlong Lat Mayom Floating Market
주소 5 Bang Ramat Rd, Bang Ramat, Taling Chan, Bangkok 10170 Thailand
이용 시간 오전 8시~오후 5시(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운영)
전화번호 +66-2-422-4270

한편, 선셋 디너 크루즈를 타고 짜오프라야강 인근 명소의 야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맛있는 음식과 멋진 경치를 감상하는 호사를 경험하길 권한다. 야경 감상의 여운을 더 음미하고 싶다면 짜오프라야강 근처 루프탑 바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강 주변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는 루프탑 바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왓 아룬 야경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은 핫플레이스로 꼽힌다. 주중이건 주말이건 언제나 붐비기 때문에 일몰 시작 전에 미리 좋은 자리를 선점하는 것이 좋다. 낮과는 또 다른 풍경에 수십 장의 사진을 찍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방콕의 밤이 되면 가볼 곳이 더욱 늘어난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가시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발걸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카오산 로드(Khao San Road)는 세계 각국의 배낭여행자들에겐 성지로 불린다.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청춘이 밤새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낭만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숙소와 레스토랑, 바는 기본이고 길 양쪽에 쭉 늘어선 노점상까지 저렴한 가격에 한 번 놀라고 분위기에 또 한 번 놀란다. 허름한 네온사인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카오산 로드의 밤은 깊어만 간다.
조드페어 야시장(Jodd Fairs Night Market)은 요즘 뜨고 있는 곳이다. 로컬 시장보다는 조금 가격이 비싸지만 깔끔하고 쾌적한 분위기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매장은 구획을 나누어 잘 정돈되어 있으며 기념품부터 수공예품, 태국 요리와 디저트까지 다채로운 품목이 마련되어 있다. 태국식 돼지 등뼈찜인 랭쌥을 파는 음식점은 한쪽 거리에 모여 있을 만큼 인기가 높다. 얼큰하고 새콤한 똠얌꿍, 다양한 재료의 조화가 환상적인 팟타이, 부드러운 게살이 씹히는 푸팟퐁커리 등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태국 음식도 골라가며 먹을 수 있다.

조드페어 야시장 Jodd Fairs Night Market
주소 Rama IX Rd, Bangkok 10310 Thailand
이용 시간 오후 4시~자정
전화번호 +66-92-713-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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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뚜짝 주말시장 Chatuchak Weekend Market
27개 구역에 1만 5,000여 개 상점이 들어서 있는 방콕을 대표하는 시장이다. 거리번호로 구분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일부 상점은 평일에도 문을 열지만 제대로 된 시장 풍경은 주말에만 만날 수 있다. 없는 게 없는 만물 시장이다.

담넌사두억 수상시장 Damnoen Saduak Floating Market
규모가 크고 여행객들에게 많이 알려진 수상시장이다. 상인들이 작은 나무로 만든 배를 삼삼오오 띄워 놓고 농산물을 비롯해 다양한 물건을 파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태국에서 가장 길이가 긴 운하에서 열리는 수상시장으로 방콕 근교 수상시장 중에서 단연 일등으로 꼽힌다.

암파와 수상시장 Amphawa Floating Market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이 주로 관광객을 위한 곳이라면 이곳은 현지인도 많이찾는다. 강가에 상점들이 늘어서 있으며 오가는 배 위에서도 물건을 사 고판다. 가격이 저렴하고 11월과 2월 사이에는 밤이 되면 반딧불이 가득해이시기에만 열리는 반딧불이 투어도 있다.

아시아티크 Asiatique
시장이라기보다는 방콕의 랜드마크라고 정의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대관람차를 비롯한 놀이동산은 물론, 쇼핑과 미식을 담당하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오후 5시가 되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다. 원래 이곳은 1900년대 태국이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될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문호를 개방하고 티크나무를 수출하기 위해 설립한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다가 2012년 현대적으로 변신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방콕 MZ 세대들이 즐겨찾는 곳

여행자들이 아닌 방콕 MZ들은 어디서 놀까 궁금하다면 그 답은 딸랏너이(Talat Noi)에서 찾을 수 있다. 이곳은 방콕의 ‘힙’한 골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1700년대 이곳은 포르투갈,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거주했는데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낡고 허름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거리에 벽화가 더해지고 갤러리와 카페가 생기면서 마치 서울의 성수동이나 을지로를 연상하게 한다.
딸랏너이는 태국어로 ‘작은 시장’이란 뜻이다. 지금 이곳엔 시장이 존재하진 않지만 눈길을 끄는 장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화양연화>의 촬영지로 유명한 ‘올드 커스텀 하우스(Old Customs House)’나 포토 스팟으로 잘 알려진 올드카가 놓인 벽 등이 그 주인공. 고철이 된 독일 폭스바겐의 소형차 비틀이 페인트가 다 벗겨진 채 골목 한쪽에 놓여있는데 그 모습이 기념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 딸랏너이를 나와서 걷다 보면 길 건너편에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꾸민 차이나타운을 만날 수 있다. 잠시 중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중국풍의 음식점과 상점이 가득하다.
방콕 MZ 세대의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장소는 초대형 규모의 복합 쇼핑몰 아이콘 시암(Icon Siam)이다. 사실 방콕에는 여러 곳의 복합 쇼핑몰이 자리하고 있다. BTS 시암역부터 칫롬역까지 이어지는 고가 인도에는 쇼핑몰들이 즐비하다. 방콕의 더위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쇼핑몰만한 장소가 없어 많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아이콘 시암은 다른 쇼핑몰에 비해 가장 최근인 2018년에 문을 열기도 했고 방콕 최초로 애플 스토어가 입점해 주목을 받았다. 물론 물건을 사기 위해서만 쇼핑몰을 찾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전시나 이색적인 팝업 스토어 등을 경험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하곤 한다. 특히 아이콘 시암은 수상시장을 콘셉트로 식당가가 꾸며져 있어 인상적이다. 목조로 만든 집과 다리 등 전통적인 수상시장의 분위기는 그대로 살리면서도 압도적인 규모가 시선을 붙든다.
방콕은 역사적인 유산과 현대적인 요소가 조화를 이루고 대도시의 각박함보다는 온화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 오랫동안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맛있는 음식과 충분한 휴식을 저렴하게 혹은 고급스럽게 두루 경험할 수 있어 여행자들이 원하는 그 모든 것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에도 여름 같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곳, 그래서 방콕은 날씨가 추워지면 절로 생각나고 그립다.

아이콘 시암 Icon Siam
주소 299 Charoen Nakhon 5 Alley, Khlong Ton Sai, Khlong San, Bangkok 10600 Thailand
이용 시간 오전 10시~오후 10시
전화번호+66-2-495-7000
홈페이지www.iconsi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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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타야(Ayutthaya)에서 오래전 역사를 마주하다
아유타야는 태국의 역사에서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도시다.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350년경에 건립되었다. 아유타야 왕조 시대의 수도였는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곳이기도 했다. 16세기 서구에서 ‘동방의 베니스’라 부를 정도였다고. 1767년 미얀마의 침략을 받아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가 유네스코에 의해 하나씩 발굴되며 세상 속으로 나왔다.

깐짜나부리(Kanchanaburi), 아름다운 풍경 속 전쟁의 아픔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배경이 된 이곳은 ‘죽음의 철도’가 자리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은 서부 아시아 점령을 위해 1942년부터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해 철도 공사를 시작했고 태국은 물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 11만 명이 넘는 이들이 이곳에서 혹사당했다. 지금도 깐짜나부리 곳곳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화유산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