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범식 님. ‘왼발박사’라는 호칭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는 스물두 살 나이에 산재사고로 두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산재라는 고통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다시 세상에 나왔지요. 왼발로 컴퓨터를 배워 회사에 다니다, 사업을 시작한 후 파산이라는 두 번째 위기를 겪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 뒤늦은 학문의 길을 걸은 끝에 돌아보니, 어느덧 58세의 나이에 교수로 강단에 서있습니다. 이런 제 삶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양팔 없는 왼발박사’라는 호칭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2024년 여름, 역대급 더위 속에 국토 종주에 도전했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하며 저를 보다 쉽고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줄여가다 보니 ‘왼발박사’라는 호칭이 완성됐습니다. 저는 강단에 서서 세상과 소통하며 희망을 전하는 사람, 왼발박사 이범식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지난여름, 서울 광화문에서 출발해 경산까지 18일간의 도보 종주를 마치셨어요.
7월 15일 서울 광화문을 출발해 31째인 8월 16일 경산에 도착했습니다. 총 462km, 65만 9,000여 발의 걸음이었지요. 돌아보면 저 혼자 힘으로 이뤄낸 일은 별로 없습니다. 31일간 많은 사람이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으니까요. 의족에 닿은 무릎이 상처로 가득하고, 목이 말라서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두 팔이 없는 제 입에 직접 물병을 대주며 격려하던 많은 시민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비록 양팔이 없고 오른발은 의족을 끼고 왼발 하나로 버티고 살아가고 있지만, 저의 도전을 통해 누구든 뭔가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길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걷기’는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니까요. 제 걸음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고 나아가 대구경북이 통합하며, 이를 통해 지방 장애인 복지 향상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만학도의 길을 걷고, 교수의 길을 도전하며 도보 종주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도전의 길을 걸어오셨어요.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1985년 11월, 산업재해를 당한 이후에는 병실에 누워 죽음을 떠올리는 날도 많았습니다. 흰 눈이 내리던 어느 밤, 다시 살아보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장애인으로서 삶을 익혀 나갔지요.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고난은 자꾸만 저를 쓰러트렸습니다. 어렵게 일으킨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모두 끝이라고 생각했지요. 어쩌면 저에게 가장 큰 고비는 산재사고를 겪은 직후가 아닌 사업 실패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일어섰을 때 닥친 시련이 더 아팠으니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선물’ 같기도 합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게 된 계기였으니까요. 애써 이루어야 할 것이 오히려 저를 살게 했습니다. 남은 왼쪽 발로 컴퓨터를 익혀 장애인 IT교육에 힘썼지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며 살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처럼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 학업의 길에 도전하였습니다. 결국 변하려면 도전해야 합니다. 학교 생활 역시 저에겐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는 도전의 연속이었지만, 그로 인한 성취감도 컸습니다. 어떤 경험이든 ‘해냈다는 마음’은 용기가 되고, 그다음 도전을 위한 마중물이 됩니다. 절망의 끝에서 저는 이제 언제든 자신 있게 희망을 그리고 도전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요.
<세상에 이런 일이>를 비롯해 <유퀴즈> 등 여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시고, 대중을 위한 강의를 펼치시는 이유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인가요?
돌아보면 제 삶의 순간순간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과 역경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제가 있었을까요? 이제 장애는 저에게 흉터인 동시에 훈장입니다. 지난여름, 도보 종주에서 얻은 무수한 생채기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은 절망의 경험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요. 함께 ‘희망’ 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열악한 지방 장애인들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고요. 제 몸과 목소리를 빌어 세상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기관과 단체, 학생이나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동기부여와 희망을 전하는 강의를 했지만, 정작 산재장애인으로서 근로복지공단을 비롯해 산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강의는 전무하여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근로복지공단 본부를 비롯해 각 산하기관과 그리고 더 많은 산재장애인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강의를 통해 제 경험이 산재환자들이 저마다의 희망을 찾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희망강사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또 다른 희망의 이야기를 준비하겠습니다.
산재를 겪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환자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산재 후에는 스스로 비참하기도 하고 원망과 탄식,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걱정이 옥죄어옵니다. 하지만 시간이 다소 걸릴 뿐 반드시 길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힘들수록 ‘이만하면 다행이다’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위로하세요. 자책보다는 스스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산재 후 저는 양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고 나서 ‘한 팔이라도 남아있더라면’하고 원망했습니다. 마음만 더 아프고 비참했지요. 그래서 ‘만약에’라는 말은 버렸습니다. 나에게 무엇이 주어졌는지, 무엇을 활용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어떻게 재활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이루어야 할 것이 있다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역경이 다가오더라도, ‘삶의 의미’가 있다면 능히 그 역경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 골몰하기보다는 주변을 바라보세요. 부모님 아내, 자녀들까지 곁에서 고통을 함께하며 바라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삶의 의미는 성장하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사고 후의 자신에게 국한되어 있지만 점차 성장하며 나 아닌 다른 대상, 가족과 사회로 옮겨갑니다. 그때는 여러분이 겪는 시련도 삶의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겪어보지 못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를 발판 삼아 성장한다면 이 시련도 어느 순간 나만의 ‘특별함’이 되고, 삶의 디딤돌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