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환자 허진호 님과 아내 박효정 님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생산 설비 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하다, 설비 사고로 안면부와 안구에 화상을 입은 산재환자 허진호입니다. 사고 후 근로복지공단 서울의원을 오가며 재활치료를 받았고, 공단의 안내로 가족화합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요. 그때의 경험이 인상적이어서 수기를 남겼는데, 이렇게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네요.

가족화합 지원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자택 치료 중 안내문을 받았을 때는 나와 상관없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어요. 그날 잠들기 전 우연히 문자를 다시 보고 사고 전 아들과 캠핑을 다니던 추억이 떠올랐죠. 사고 후 집에만 있던 내가 처음으로 집 밖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막상 참가하니 다른 환자 분과 교류하며 ‘고통스러운 산업재해가 왜 하필 나에게만 생겼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며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좋았습니다.

재활 과정에서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사고 초기에는 한 눈은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눈도 빛만 구분하는 상태라 생활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두렵고 모든 게 무너져 내렸죠. 점차 오른쪽 시력이 회복되면서 ‘한 눈으로나마 볼 수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희망이 생기고 조금씩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경제 활동이 중단되고 병원비 지출이 늘면서 생활비 걱정이 컸는데요. 근로복지공단의 안내를 받고 휴업급여와 간병비 등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금전적, 심리적 지원 제도들이 큰 도움이 되었죠.

가족도 큰 힘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들이 “아빠가 얼른 나아서 예전처럼 몸으로 신나게 놀고 싶다”라고 말하더라고요. 열심히 치료하고 있지만 아직은 몸을 크게 움직이는 건 무리인데요. 전처럼 땀 흘리며 함께 뛰어놀 날을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아내의 역할이 컸죠. 첫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 무척 예민하던 저를 잘 다독여주었습니다. 집안의 작은 불빛에도 눈이 시리고 아플 때, 아내는 하교한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서 혼자 숙제를 봐주고, 놀아주고, 씻긴 후에 잠든 아들을 업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눕히는 생활을 최근까지 했습니다. 아내에겐 고맙다는 말 외엔 어떤 표현도 부족해요. 저도 아내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남편이 되어주겠습니다.

아내 분께서는 산재환자의 가족으로서 어떤 점을 신경 쓰셨나요.

산재환자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은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단계별로 겪습니다. 부정, 죄의식,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입니다.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산재환자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저는 남편이 분노를 겪을 때, 그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트라우마 치료를 적극 권유했습니다. 또 산재환자의 가족 역시 돌봄과 치료가 필요합니다. 저 역시 혼자 드라이브하며 엉엉 울기도 하고, 속이 후련할 때까지 소리도 질러봤어요. 그러면서 남편을 지지해 줄 나의 에너지를 충전했지요. 사고 초기에는 환자와 가족들 모두 놀라고, 보호자가 환자 곁에 상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상처에 대한 초기 대응은 의료진이 담당하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불안과 부정에 대한 초기 대응 역시 분명히 필요합니다. 이는 환자와 가족들의 트라우마 치료 과정을 단축시키는 효과로도 연결됩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접수 단계에서 초기 상담을 통해 환자가 앞으로 겪게 될 심리상태의 변화에 대해 가족들이 예측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와 필요한 서류, 향후 진행 방향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진다면 상황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또 치료 중기에는 길어진 치료 기간으로 보호자가 연월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도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산재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이겨낼 힘이 무척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2024년 올 한해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신가요.

가족화합 지원프로그램 이름이 ‘우리 가족 愛기해요’였는데요. 요즈음은 가족 간에 기분 상할 상황이 생기면, 마치 유행어처럼 ‘우리 가족 또 기해요~’라고 말한답니다. 지난해에는 제 치료와 재활에 전념했다면, 올해는 ‘우리 가족 또 기해요’의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처럼 여행도 다니고, 지인과 가족모임도 가져보려 하고요. 제가 사회에 복귀하듯, 우리 가족이 화합하여 예전의 모습으로 복귀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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