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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지극한 행복

7년 간의 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을 때, 내가 느낀 가장 큰 행복은 ‘해방감’이었다. 사직서를 내고 곧장 회사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가면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왜 어렵게 뚫은 언론고시를 내던져?’, ‘어디서 제안 왔어? 어디로 가는지 나한테만 말해줘’ 등등. 선배와 동료의 끊임없는 잔소리와 질문들을 묵묵히 버티는 동안 마음속에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나가길 잘했다. 나는 이렇게 시시콜콜 집안 숟가락 개수까지 알고 싶어 하는 조직의 분위기가 버거웠다. 언론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선배들은 내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궁금해했고, 나의 기질을 파악하기 위해 몇 번이고 나를 테스트했다. 회사에 적합한 인재여서 뽑은 게 아니라, 일단 뽑은 후 회사에 적합한 인재로 키우는 게 수순이었다. 무수한 회식과 밤샘, 기다림과 핀잔을 견디고 결국 번아웃이 왔다. 자랑스러운 언론사의 조직원이 되고 싶었지만, 동시에 ‘나’로서 존재하고 싶었다. 더 이상 몸 담은 조직에 어울리는 인간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만한 해방감이 어디 있을까? 함께 고생하던 동기들과 헤어질 때는 제법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연락하자는 말을 나누고도 한동안 나는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혼자 일하는 사람들을 기록하는 인터뷰집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한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다. 그들은 누구도 ‘혼자’임에 두려움이 없었다. 혼자 밥 먹거나 혼자 여행하는 일은 지극한 기쁨이지 초라함이 아니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겠다는 선언은 기성 세대에겐 대책 없는 객기처럼 보이겠지만, 요즈음의 세대에겐 두려움 없는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혼자가 되겠다는 말이 사회적 고립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아니다. 이제 개인은 사회와 다른 방식으로 관계맺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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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연대의 즐거움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채로 고독을 마음껏 만끽하며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 지난 7년 동안, 나는 여전히 혼자가 좋다. 하지만 내 삶조차 결국 나 혼자만의 힘으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벗어나고 싶었던 조직에 아직도 남아있는 친구를 보며 안정적이라서 부럽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적도 있다. 살면서 묻어나는 소소한 고독을 가족에게, 친구에게, 옛 동료에게 기대며 살아가고 있다. 조직에서 내가 느꼈던 불안감은 개인의 독립성을 자칫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왔다. 사회 초년생이었던 나는 내 쓸모에 끊임없이 회의를 느껴야 했던 환경이 두려웠다. 누군가 내게 너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조직 안에서 ‘나’를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덜 느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온전히 ‘나’로서 인정받으며 ‘우리’가 되고 싶었다. 촘촘한 연대가 아닌 느슨한 연대로. 프리랜서 근로자 모임을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고, 서로의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이어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른바 ‘MZ’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대가 회사에 소속감을 느끼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속 이전에 개인으로서 존중이 먼저다. 언론사 소속이 아닌 개인이 되고 나서야 나 자신의 독립성을 확인받을 수 있었지만, 반드시 퇴사가 답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를 살아왔다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혼자이고 싶어 하지만, 혼자일 때 불안을 느낀다. 이럴 때 좋은 대안이 되어주는 것이 적당히 느슨하고 다양한 형태로 연대하는 방식의 관계 맺음이다. 조직 역시 개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수직적 구조가 아닌, 수평적 연대가 되어야 한다. 조직원들이 같은 비전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자유로이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새로운 세대는 직무 중심으로 전문성을 쌓고,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조직에 충성하고 싶어 한다. 한 회사에서 적을 두지 않고 이직과 퇴직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남고 싶은 조직은 어떤 모습일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면 답을 내기 훨씬 수월할 테다. 코로나19로 긴 단절의 시기를 보냈던 우리에게 지금 ‘소속’이란 그 어떤 시기보다 중요한 화두다. 포용적이지 못한 환경에 소속감이 가로막힐 때 사람들은 좌절한다. 개인의 다양성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한 이유다.

글. 김솔
프리랜스 라이터. 오랜 기간 신문사 국제부 기자로 일하다 인터뷰어 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에서 그림책 서점을 운영하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공정무역 종사자, 1인 출판 업자의 인터뷰집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