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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전세계 의료의
패러다임이 ‘잘 살리는 것’에서
나아가 진료 과정이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
여부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공단 병원이 환자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좋은
병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길 바랍니다. -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김선민 진료과장
태백병원에 부임하신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건강과 복지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온 공단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태백병원에 왔습니다. 공단의 가족이 되고 보니 산재보험이 과거에 비해 눈부신 발전을 거뒀음을 새삼 느낍니다. 지면을 빌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1990년대 초반, 산업의학과 전문의가 없던 시절부터 노동자 건강과 복지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며 굉장히 열악했던 환경에 좌절했던 기억도 납니다. 근로복지공단 직원들의 부단한 노력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며 매일 벅찬 마음으로 출근하고 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지내며 오랜 시간 일선에서 힘써 오셨는데요. 산재전문의료기관인 태백병원에서 환자를 만나기로 결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17년간 직원으로 근무하며 어느 순간, 제 임기 이후의 삶을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기획이사가 되고부터는 부쩍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요. 처음 의사가 됐을 때, 직업환경의학(당시 산업의학)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떠올렸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직업환경의학과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엿보기도 했고요. 태백병원은 직업환경의학과 의사에게는 특별한 역사적 함의가 있는 곳입니다. 마침 병원 공고가 났기에 지원을 하고 구경도 할 겸 근처에 와봤어요. 병원을 보자마자 이곳에 오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제가 있어야 할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아직은 직업환경의학 분야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근로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이제 의사들 사이에서도 직업환경의학을 공부하려는 젊은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직업과 건강의 연관성과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시는 근로자도 많더라고요. 직업환경의학은 산재와 관련해 질병의 업무관련성 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라면 산재보험의 정확한 판단을 위해 열정과 이성을 동시에 품고 있어야 하고요. 일하다 다친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을 기반으로 하되, 지난한 서류작업을 위한 꼼꼼함과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사실에 기반한 냉철한 판단은 기본입니다. 근로자 분들께 직업환경의학의 중요성에 대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국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정말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하나 더 당부하자면 의사의 말에 귀 기울여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일하면서 생기는 많은 직업성 질환이 고혈압이나 당뇨, 음주, 흡연 등 일상 속 건강 습관과 관련해 있거든요. 부디 매일의 사소한 건강에 신경 쓰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서 길을 개척해 온 리더로서 같은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실 말씀도 많으실 것 같아요.
너무 많죠. 오랜 시간 여성 근로자는 사회의 마이너리티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연대의 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첫 여성 원장으로 근무하며 ‘여성’이어서 힘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왜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니 조직에 일찍부터 많은 여성 선배들이 계셨어요. 근로복지공단 역시 여성 직원이 많고 각자의 자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기반을 마련해 왔습니다. 선배들이 힘들게 개척해 온 길을 제가 따라가니 수월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후배들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요. 다른 직원분들도 10년 후, 20년 후 후배들의 갈길이라 생각하고 매일 용기를 갖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태백병원에 와서 보니 새삼 근로복지공단의 조직문화가 참 좋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원장, 즉 고용인이 아닌 피고용인이기에 느낄 수 있는 사실이겠죠.(웃음) 많은 여성들이 서로 보듬고,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의 앞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그 어떤 어려움도 헛되지 않을 겁니다.
과장님께서 생각하는 ‘좋은 의사’ 그리고 ‘좋은 병원’이란 어떤 사람, 어떤 병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똑똑한 의사’와 ‘착한 의사’가 있다고 한다면, 결국 착한 의사는 똑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요. 환자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의사는 결국 발전합니다. 병원도 마찬가지겠죠. 오랜 시간 병원을 평가하는 업무를 해보니, 병원장을 비롯한 병원 직원 모두가 환자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차츰 좋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근로복지공단 병원의 업무 중 하나인 업무관련성 판정 역시 근로자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야 객관성을 잘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최근에는 전 세계 의료의 패러다임이 ‘잘 살리는 것’에서 나아가 진료 과정이 ‘얼마나 좋은 경험’이었는지 여부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공단 병원이 환자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의료의 질을 높이는 좋은 병원으로 꾸준히 성장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태백병원 취업하기 전에,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해 책을 준비했어요. 이제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으니, 곧 책을 통해 많은 분들과 만나고 싶어요. 또 당분간은 태백병원에 잘 적응하고 그동안 발전해 온 직업환경의학 분야를 공부하는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업무관련성 판정 역시 합리적인 판단 케이스를 꾸준히 쌓아 나가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고요. 현재로서는 이게 저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입니다. 공단 병원에 와보니 많은 의사분들이 소신을 갖고 진료를 이어가고 계시더라고요.
환자 분들께서는 근로복지공단 병원을 믿으시고 회복과 치료의 여정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