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에세이 이미지1

글. 박사
방송, 신문, 잡지 등 각종 매체에서 책을 소개하고 글쓰기를 가르친다. 정기적으로 책 낭독행사인 〈책듣는밤〉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저서로는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은하철도999_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빈칸책〉,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가꾼다는 것〉 등이 있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고

사거리에 들어선 우리 스쿠터를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가 들이받았을 때 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프기도 아팠고 놀라기도 무척 놀랐거든요. 스쿠터 뒷자리에 앉은 채 차에 부딪친 저의 오른쪽 종아리는 금세 파랗게 멍이 들었어요. 다행히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충격은 오래갔어요.
20년이 넘게 운전했지만 사고는 처음 당한 스쿠터운전자와 초보운전이라 사고는 처음 일으켰다는 상대편 운전자는 아픈 저를 길가에 방치한 채 우왕좌왕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저는 일단 제 상황을 짤막하게 SNS에 올렸습니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의 댓글이 올라왔고,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조언해 주는 은인이 여럿 나타났어요. 경찰과 구급차가 등장해 수습하는 사이에도 조언은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사고가 난 이후 정말 놀랐던 건 수습하는 과정이 일반인인 제가 알기에는 너무 어려웠다는 겁니다. 마침 교통사고 전문병원의 의사였던 분이 조언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적절한 치료를 받기 힘들었을 거예요. 대인접수 여부를 바로 확인하고, 지불보증서가 의료기관에 도착했는지 처리하고, CT검사받고,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삼일 내로 입원해야 하고, 한번 입원하면 최대 5박 6일이며, 2주에 한 번씩 추가진단서 발급받아야 하고. 조언에 따라 하나하나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 교통사고를 당했던 경험자들이 나타나 후유증으로 시달린 후일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어땠을 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합니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나서서 말씀해 주신 덕분에 비교적 순탄하게 회복할 수 있었어요. 또 놀랐던 것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디서 어떻게 조언을 듣고 사고를 처리했던 것일까요? 후유증 겪은 분들이 많은 걸 보면, 적절한 조언을 적절한 때에 듣지 못했던 것이겠지요. 그랬기에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어 했던 것일 테고요.

우리는 정말 ‘혼자’일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독립해서 제법 혼자 잘 꾸려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제 몸 하나 건사하고 제때 살림 챙기는 것을 벗어나는, 조금이라도 큰 사건이 생기면 도움이 절실해지죠. 옛 어른들은 집안에 판검사나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들 하셨는데, 이렇듯 도움이 필요할 때 어디에 손을 내밀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지금은 비교적 도움을 청하기 쉬워졌어요. 인터넷으로 알아보기도 편리해졌고 단체도 많아졌지요.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타나도 벼룩시장 사이트에 잡아달라고 올리면 해결할 수 있게 됐으니 ‘힘 있고 빽 있는’ 사람들만 편하게 살 수 있었던 때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일 겁니다. 다른 이를 도와주면 나도 도움을 받고, 남을 위해 싸워주면 내가 궁지에 몰렸을 때 누군가 나를 위해 싸워준다는 단순한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퇴원한 지 며칠 지나고 지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자면서도 방법을 모르는 그분께 내가 들었던 정보들을 고스란히 전달했지요. 나중에 극진한 감사인사를 받았습니다. 서로 돕는 일은 파도와 같지요. 일파만파 퍼지는 파도가 언젠가는 돌아와 내 발등을 적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단순한 진리는 힘이 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