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에세이 이미지1

글. 구선아
작은 책방을 운영하며 읽고 쓰는 삶을 산다. 직장인 10년 차 기념으로 퇴사하고 프리워커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때론 대충 살고 가끔은 완벽하게 살아〉, 〈일상생활자의 작가 되는 법〉, 〈돈과 나와 일(공저)〉 등을 썼다.

“이렇게 살면 불안하지 않아요?”
“왜 불안하다고 생각해요?”
“불확실하잖아요. 월급도 일도. 만나는 사람도요”

우리는 왜 불안할까?

책방을 운영하며 종종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의 무엇이 그들에게 불안해 보였을까? 매달 정해진 월급을 못 받아서? 책방은 돈을 못 번다는 인식 때문에? 누가 시키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일을 해야 해서?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까? 세상에 확실한 게 얼마나 될까? 과연 있긴 한 걸까? 내일도 오늘처럼 보통의 날일 거라고 누가 확언할 수 있을까? 우린 매일 불확실의 결과로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우리가 겪는 불안은 모두 다르다. 어떤 공포심으로 발작이 일어나는 공황장애, 비현실적인 상상이 동반된 범불안장애, 비난받거나 창피하거나 실패하는 걸 몹시 두려워하는 사회불안장애, 그리고 자기비판, 번아웃, 강박과 같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안 증상도 있다. 아마 많은 현대인이 자신도 모르게 얕거나 깊은 여러 불안을 겪고 있을 테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는 실패를 덜 경험하며 성장했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막상 성인이 되어 만난 실제 세계는 달랐다. 나보다 잘난 사람, 돈 많은 사람, 예쁜 사람, 스펙 높은 사람, 머리 좋은 사람은 무수히 많고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더구나 사회는 자꾸 개인에게 성공을 좇으라, 말하고 진리라 여긴 것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나도 불안에 잠식되던 때가 있었다. 불안은 불면으로 왔고, 불면은 무기력을 가져왔다. 음식, 운동, 일, 술, 쇼핑, 여러 방법으로 불면을 극복하고 나니 이후엔 불안하면 잠을 잤다. 잠이 일종의 도피처였던 셈이다.

불안과 함께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간다

자꾸 잠자는 시간이 늘었고 잠을 자며 자주 근육 경련을 느꼈다. 그러던 한여름 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던 불안이 피할 수도 없고 근원적으로 제거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나의 생물학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로 형성된 것이므로.
과거는 지금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다. 현재는 과거가 쌓인 오늘이니 이 역시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면 내일은? 내일은 지금 내가 움직이면 바뀌지 않을까? 확실한 내일은 없지만, 오늘 움직인 만큼 변하는 건 사실이다. 그때부터 난 불안하면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마땅히 할 일이 떠오르지 않으면 옆에 놓인 책을 읽는다. 불안을 잊으려고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불안을 내 몸 어디 한 곳에 끼워놓고 책 속 글자에 집중한다. 놀라운 건 책 읽기는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 준다는 것. 글쓰기, 책방 운영, 내 몸과 마음과 관계의 돌봄, 그리고 발견하지 못했던 생각들. 그렇게 움직이니 불확실한 내일은 조금씩 변하였고, 불안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어쩌면 우린 불확실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불안으로 불확실을 만드는 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내일은 처음이고 서투르다. 그러니 불안할 수밖에. 불안해도 괜찮다. 불안과 함께 불확실한 내일을 살아가는 게 나의 삶이자, 당신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