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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극윤 근로복지공단 제2대 이사장

경제위기가 불러온 실업대책과 소외계층 보호확대

“모두에게 참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났고 우리 공단도 살을 깎는 심정으로 매일을 보냈지요.”
공단을 떠나 20년, 한국사회보험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방극윤 전 이사장에게 재임 시절은 마치 어제 일인 듯 선연하다. 1998년 IMF 위기와 함께 이사장으로 취임한 그에게 당장 주어진 과제는 구조조정과 실업 대책 마련이었다.
“고용정책기본법에 따라 정부 차원 실업대책사업을 공단에서 맡았습니다. 그러나 경제가 워낙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막대한 예산이 걸림돌이 되었지요. 비실명 채권 발행과 함께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정부 지원 5,000억을 포함해 총 1조 4,000여 억 원의 기금을 우리 공단 힘으로 마련하여, 실업자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민간 차원의 실업구제 극복사업도 공단 몫이었습니다. 故 김수환 추기경과 故 강원용 목사, 故 송월주 스님까지 종교 대표 분들을 위원장으로 모시고 문화방송, 한겨레 신문과 함께 실업극복 국민운동을 펼쳤습니다. 147만 국민이 참여해 1,141억 원을 기탁했지요. 귀중한 돈은 노숙자 무료급식사업 등으로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매일 쏟아지는 실업자 현황을 확인하고 청와대와 각종 정부부처를 바쁘게 오가던 당시의 방극윤 전 이사장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존재는 국민 그리고 묵묵히 따라와 준 직원이었다. 웃을 날 없이 바쁘기만 했던 나날이었지만, 어려운 근로자를 보호하는 여러 제도를 도입하는 마중물이 되었다.
산업 구조 악화로 기업이 지급하지 못한 임금을 정부가 대신 보장해 주는 체당금 제도 역시 이 시기에 생겨났다.
노동자 복지를 위한 품도 커지던 시절이었다. 국가 위기가 비춘 근로 사각지대는 생각보다 더 크고 깊었다. 우선 산재보험과 행정대상이 같은 고용보험 부과 징수 업무가 공단으로 이관됐다. 이전까지 보호 사각지대에 있던 4인 이하 사업 근로자에 대해서도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이 확대 적용되면서 업무량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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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 여행 중 멧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BTS 공연장에서

더 나은 국민 삶의 질을 고민하다

“근로자 복지에 대한 국민 요구가 점차 더 커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근로 문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지요. 실업자 대책을 마련하면서도, 이전 상황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닌, 더 나은 삶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습니다. 산재보상의 양적, 질적 수준 제고와 더불어 보상 구조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했지요. 재활사업 역시 기존의 보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원직 복귀를 위한 전문적인 재활 서비스 제고를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현재의 재활공학연구소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어, 힘든 순간만큼 보람도 많았다고 방극윤 전 이사장은 회고했다. 온 국민이 참여한 모금사업의 성공으로 늘어난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낼 수 있었던 날들은 지금도 감사한 기억으로 남는다. 공단 역시 구조조정의 그늘을 피할 수 없었기에, 떠나보낸 직원들은 아직도 그의 마음 한편에 지워지지 않는 숫자다.
“늘 빚을 지며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 역시 물밀듯이 밀려오는 새로운 사업을 정착시키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겁니다. 특히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을 아우르고, 확대된 사업장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유관 기관과의 전산 연계가 필요한 상황이었는데요. 확장된 산재보험 사업의 통합전산시스템개발을 위해 밤낮으로 불이 꺼지지 않던 전산실 풍경이 떠오릅니다.”
3년간의 숨 가쁜 날들을 뒤로하고 방극윤 전 이사장은 사회보험을 연구하는 사단법인인 한국사회보험연구소를 개설했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그가 가장 관심을 깊게 두는 분야이지만, 건강보험과 국민연금까지 궤를 확장하며 국민을 위한 안전망을 깊고 넓게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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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로자의 복지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하는 국민 삶을 책임지는
    공단 직원 여러분.
    앞으로도 자신감 있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애정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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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기에

“최근에는 제 자신을 돌보는데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15년째 하루 1만 보를 걷고, 붓글씨를 쓰지요. 매일 일기를 쓰고 반드시 글을 읽습니다. 시간이 나면 이곳저곳 여행을 떠나며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무언가를 듣고 알게 되는 재미를 즐기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본연의 이름보다 K팝의 선구자라 불리는 방시혁 대표의 아버지로서 소개될 때도 많았다. 책을 탐독하며 음악에 골몰하던 아들의 성장을 그는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 겸손하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음악가이자 기업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방극윤 전 이사장은 멀리서나마 늘 가족의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공단 후배들에게도 격려의 인사를 전했다.
“근로복지공단의 구성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거리도 그만큼 많아지겠지요. 잘해왔기 때문에 그만큼 새로운 일이 주어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IMF라는 큰 시련을 가장 앞서서 헤쳐낸 공공기관이 바로 근로복지공단입니다. 모든 직원이 어려운 시절을 합심해서 이겨냈습니다. 큰 일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조직이고, 그만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 소속해 있습니다. 과거에는 경제 발전을 복지보다 우선한 가치라고 여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근로자의 복지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하는 국민 삶을 책임지는 공단 직원 여러분. 앞으로도 자신감 있게 나아가길 바랍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애정을 보냅니다. 근로복지의 허브로서 항상 따뜻한 사랑이 깃든 조직으로 발전하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