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의 겨울, 사계 가운데 가장 치열하다
태백의 겨울은 유난히 혹독하다. 그 면모는 태백(太伯)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클 태(太)에 흰 백(白), ‘온 세상이 하얗다’라는 뜻이다. 살을 에는 듯한 강한 바람도 한 몫 한다. 한때 검은 석탄 가루가 온 도시를 뒤덮더니 이제는 새하얀 눈이 태백을 뒤덮었다. 태백은 영월, 삼척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탄광 도시다. 석탄 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태백의 탄광촌과 거리는 연일 북새통이었고 밤새 흥청거렸다. 일거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1980년대 중반 인구가 13만이 넘었다. 심지어 석탄 수요량이 폭증하는 가을에는 ‘동네 개도 만 원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광산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그 많던 광부들도 바람에 나는 겨처럼 어디론가 흩어졌다. 태백은 늪에 빠진 듯 서서히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전국의 시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은 도시가 되어버렸다. 철암동과 상장동이 대표적이다.
고원도시 태백에서는 고드름이 한 번 얼어 붙으면 3월까지 남아 있다.
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아직 지키는 사람도 있다
철암동은 고원 도시 태백의 적통이 분명하다. 동서남북에 해발 1,000m가 넘는 연화산(1,171.2m)과 백병산(1,259.3m), 두골산(1,044m)이 병풍처럼 에워쌌기 때문이다. 철암동은 한때 인구가 5만 명에 이르렀다. 철암역을 중심으로 큰 상권도 형성되었다. 4층 건물의 철암역이 당시 모습을 웅변하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철암역은 우리나라 석탄 산업의 상징으로 국내 최초 무연탄 선탄시설이자 우리나라 근대산업사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현재 역사는 1985년에 지었지만, 철암역이 영업을 시작한 것은 1940년으로 묵호~철암 구간 철도가 개통하면서부터다. 그 덕택에 등록문화재 21호로 지정되었다.
잿빛에 뒤덮인 철암역이 영화 촬영지로 등장한 적이 있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주인공 안성기와 박중훈이 철암역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제목처럼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주먹다짐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한국 액션 영화사상 가장 화려하고 감성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고 유지나 영화평론가가 극찬했다.
철암역 건너편 마을 풍경 역시 매우 독특하다.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분위기다. 양철 간판에 경북식당, 한양다방, 젊음의 양지, 산울림, 페리카나 같은 당시 유행했을 법한 상호들이 여전히 걸려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 구역이 철암탄광역사촌으로 조성되면서 박물관이나 전시장으로 사용 중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석탄산업의 역사와 광부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 실제 광부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전시하고 있어 당시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일명 ‘까치발 건물’ 11동이 보인다. 까치발 건물은 주거공간이 부족해지자 철암천 바닥에 목재나 철재로 지지대를 만들고 건물을 덧대 확장한 것. 얼핏 물속에 기둥을 박아 세운 수상 가옥처럼 보인다. 당시 열악했던 주거환경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철암에 모여들었는지 알 수 있는 탄광촌의 상징물과 같다. 마을 주민의 말에 따르면 1960~70년대 철암동의 까치발 가게 하나가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값보다 비쌌다고 한다. 그들에게 철암동은 막장에서 발견한 약속의 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철암천 건너편은 삼방동이다. 골목길에 발을 들이면 치열했던 삶의 기운과 고단했던 광부들의 애환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골목길은 1km 남짓 미로처럼 이어진다. 담장 곳곳에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철암탄광역사촌에서 10km 남짓 떨어진 상장동벽화마을 역시 1970년대까지 함태탄광, 동해산업 등에 근무하던 광부들의 사택촌이 있었다. 당시 광부 숫자는 4,000여 명에 이르렀다지만, 지금은 주민이 400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 벽화의 특징은 매우 사실적이다. 광부들이 막장에 들어가는 장면부터, 탄을 캐고 도시락을 먹는 모습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 탄광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있는 만복이 그림도 있다. 때마침 연탄을 들이는 집이 있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연탄을 짊어지고 나르는 인부. 그의 뒷모습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다. 그가 나르는 연탄이 단순한 난방 연료가 아니라, 겨울을 이겨낼 가족의 사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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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철암탄광역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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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 나르는 모습, 도심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되었다.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은밀한 곳에 깃든 샘물이 있다. 한강의 발원지, 태백 검룡소다. 옛사람들은 이곳에 신령한 용이 산다고 믿었다. 검룡소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었다. 가느다란 계곡의 모양새가 용을 닮아 구불구불 휘감긴다. 검룡소 가는 길은 조붓하다. 큰 키를 자랑하는 수목이지만 앙상하기 그지없다.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한 오솔길에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길옆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졸졸졸 노래를 부르며 이제 막 태어난 강물이 경쾌하게 흐른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라는 성경의 한 대목처럼 이 작디작은 물줄기가 장장 514km를 달려 한강의 기적을 낳고 서해와 만난다.
샘을 품은 숲은 걸어 들어갈수록 깊고, 물줄기는 더 가늘어진다. 물줄기 그 끝은 고요의 극치에 닿아 있다. 마치 어미의 자궁 속처럼. 이제껏 본 적 없는 은밀한 생명의 신비다. 검룡소와 가까운 곳에 매봉산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여기서 동해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때마침 하늘이 푸르고 맑다. 동해를 볼 욕심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산비탈을 달린다. 어느새 울퉁불퉁 구불구불한 시멘트 포장도로 끝이다. 차창 밖으로 광활한 설경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풍력발전기가 서 있다. 웅장한 규모에 감탄이 절로 터진다. 하지만 차 밖에 나오는 순간 바다를 보겠다는 기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면도칼보다 매서운 바람이 볼때기를 후려서다. 바람은 발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바람은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얼굴을 향해 잽, 레프트, 라이트, 훅을 날린다. 보이지 않는 바람에 진탕 당하고 게 눈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차 안에 몸을 숨긴다. 스파링 상대를 놓쳐버린 바람이 울부짖듯 울어댄다.
낙동강의 기나긴 여정, 이곳에서 시작하다
혼비백산 바람을 피해 향한 곳은 태백시 황지동이다. 태백의 중심 상권인 이곳에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다. 황지연못은 원래 ‘하늘못’이라는 뜻으로 ‘천황(天潢)’이라 불렸지만, 더 많이 알려진 것은 황부자 이야기다. 전설에 따르면 연못이 있던 터가 원래 ‘황(黃)’ 씨 성을 가진 황부자의 옛 집터라고 한다. 황부자는 돈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심보 사나운 인물로 하늘의 노여움을 받아 고래등 같은 집이 땅속으로 꺼지면서 큰 연못이 되었다고 한다. 황지연못 주변에는 ‘낙동강 천삼백 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는 글씨가 집채만 한 바위에 큼지막하게 쓰였고, 그 뒤편에 상지(上池)와 중지(中池), 왼편에 하지(下池)가 있다. 연못의 둘레는 각각 약 100m, 50m, 30m이다. 상지 남쪽 깊은 수굴에서는 하루 약 5,000톤에 달하는 물이 샘솟는다. 연못 주변에 심어놓은 모든 수목이 동면에 빠진 터라 화려한 조명이 연못 주변을 화사하게 밝혀 아쉬움을 달랜다. 혹독한 겨울이지만 마르지 않고 샘솟는 검룡소와 황지의 물줄기처럼 작은 희망이 더 큰 2022년을 만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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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은 지난 1936년 첫 개원한 이후 지난 1995년 산재의료관리원 장성병원으로 이관하고 이어 한국산재의료원 태백중앙병원,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으로 개칭, 매년 꾸준히 병상을 증설하여 현재 13개 진료과 540병상을 보유하고 태백 광산지역 근로자 및 지역주민에 대한 진료와 근로자 건강진단, 작업환경 개선지도, 진폐정밀진단 등 산업보건사업을 수행함으로써 광산지역 근로자 및 지역주민을 위한 보건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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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보드미길 8 (장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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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방동 골목길, 광부들의 애환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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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발 건물에서 남편을 배웅하는 광부의 아내 조형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