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으로 시작한 첫 발걸음

“이사장직 면접 심사를 위해 영등포 사옥에 처음 갔던 날이 생각납니다. 건물 입구 앞에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각각 입구 양쪽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었어요. 통합된 공단에 걸맞은 인사를 선임하라는 목소리였죠. 노동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온 제가 조직 통합과 함께 닥쳐올 여러 어려움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할 수 있을지 우려도 컸습니다.”
신임 이사장만큼이나 임직원 모두가 혼란스러웠던 당시를 회고하는 그의 얼굴에 이제는 편안한 웃음이 감돈다.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어진 과제가 무거웠지만, 신영철 전임 이사장은 조직 통합이 조합원들에게 그만큼 절박한 마음임을 헤아렸다. 곧바로 양 노조위원장을 만나 대화를 시도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두 가지는 꼭 지키겠다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요. 저에게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직은 다른 자리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제 공직 인생의 마무리인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고요. 욕심 없이 사심을 갖지 않고 원칙과 기준대로 일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양 노조 모두 상호 간에 신뢰를 갖고 일해보자고 말씀드렸죠. 다섯 시간이 넘는 긴 대화 끝에 뜻을 모을 수 있었고, 무사히 임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업무와 목표를 가지고 성장해 온 두 조직이 만나 하나의 비전에 뜻을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신영철 이사장은 노사의 불신을 해소하지 않으면 공단의 발전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먼저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의 지사와 병원, 본부,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업무 보고는 생략했다. 대신 10~20명 남짓의 직원들을 모아 간담회를 이어갔다.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설움, 고충이 저마다 달랐다. 서로 다른 직무와 소속의 사람들이 한 번의 만남으로 화합할 수는 없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솔직한 대화가 변화를 향한 물꼬를 터줬다.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

“종전의 산재의료원이 산재환자 치료와 요양에 집중했다면, 근로복지공단은 공정한 보상과 요양 관리에 집중했습니다. 파편화한 의료와 복지, 보상 등 다양한 역할을 모아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야 했죠. 따라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산재 후 직업 재활에 집중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산재보상과 치료 모두 근로자가 다시 일터와 가정으로 돌아가는데 목적이 있으니까요. 산재환자가 치료를 받고 궁극적으로 자기 일을 찾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요양, 산재보상, 재활 등이 서로 연계되어 체계적으로 지원되는 업무 프로세스로 개선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내부적인 어려움도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설득으로 점차 공감대를 쌓아갔다. 복지 분야에 대한 개선도 이루어졌다. 당시 새롭게 확대된 근로자 퇴직연금을 근로복지공단이 관리하게 된 것. 업무량이 늘어나더라도 공단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정부를 설득해 5인 이하 사업장에서 30인까지 관리 대상을 확대했다. 퇴직연금은 근로자 복지를 위해 꼭 필요함은 물론, 공단의 미래 잠재 성장 동력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신영철 이사장은 회고했다. 푸른 씨앗으로 열매를 맺은 퇴직연금의 성장세는 신영철 이사장에게 여전히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업무가 늘어나며 2년 동안 잠겼던 채용의 문도 열었습니다. 당시 젊은 직원들이 일이 많아 결혼도 못하겠다며 하소연을 하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 공단의 업무는 크게 증가한데 비해 업무 효율은 떨어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 시기를 참고 버텨준 덕분에 1년 만에 제도 및 프로세스 개선과 전산시스템의 효율화를 통해 업무를 크게 감축할 수 있었고요. 업무 개선 이후에는 휴일근무와 야간 근무도 상당 부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내부적인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었다. 조직 통합 과정에서 아웃소싱이 예정된 300명의 병원 시설 등 관리 인력이 구조조정의 위기에 놓인 순간이다. 정원이 비는 곳마다 직무 변경 배치를 해도 계속해서 남아있던 130명의 일자리가 신영철 이사장의 근심 속에 내내 머물렀다.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와 설득 노력 끝에 구조조정 없이 조직 통합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기에, 그에게는 임기 시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조직이 커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만큼 그 많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쉽지 않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 힘든 일을 묵묵히 하는 후배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노력이 있어 오늘의 공단이 있습니다.

행복 파트너를 향한 격려

“근로복지공단은 당시에도 7,000명이 넘는 큰 조직이었지만, 이제는 만 명을 넘기며 준정부기관 중 손꼽히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그만큼 공단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여러 과제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산재보험은 과거에는 사고로 인한 부상이 주였다면, 이제는 질병의 비중이 커지고 있고 고령화로 인해 이는 더욱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산재보험의 역할은 더욱 확장되어야 하고요. 조직의 역할과 규모가 더 커지는 만큼 얼마나 효율적으로 꾸려갈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겠죠. 하나의 일을 해결하면 새로운 과제가 생겨나는 상황 속에서 내부의 업무적 피로도 역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될 것입니다.”
최적의 조직은 어쩌면 이상이겠지만, 이를 향해 나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근로복지공단이 결국 일하는 사람, 국민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영철 전임 이사장은 마지막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10년이 넘도록 공무원 역량 교육을 통해 후배들의 정책 역량 함양에 기여하는 한편, 사단법인 노정 회장 등으로 공익적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며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현재는 비영리단체인 ㈔한국안심일터기술원을 이끌며, 안전진단기관으로서 산업재해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신영철 전임 이사장은 앞으로 행복파트너로서 주어진 길을 가야 할 후배들에게 고마움과 진심 어린 격려를 건넸다. 모두가 역량 있는 직원으로 발돋움하기 바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조직을 나온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직이 커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그만큼 그 많은 일을 수행하고 있는 직원들을 떠올리게 되니까요. 쉽지 않고 어려운 길입니다. 그 힘든 일을 묵묵히 하는 후배들에게 감사합니다. 그 노력이 있어 오늘의 공단이 있습니다.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루어 낸 공단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공단 공유의 포괄적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도전하길 바랍니다. 업무를 덜어내려고 하기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효율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길 바랍니다. 모든 직원이 역량을 갖추고 성장할 때, 근로복지공단이 비로소 모든 사람의 행복파트너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요? 그 가운데 일하는 보람과 긍지가 함께할 것입니다.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