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
지상의 모든 곳에서 신이 깜빡 흘리고 간 아름다운 문장을 용케 발견하고 싶은 사람.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의지’를 날마다 배우는 사람.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KBS 제1라디오 〈이다혜의 영화관, 정여울의 도서관〉, 네이버 오디오클립 〈월간 정여울〉,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살롱 드 뮤즈〉를 진행하고 있다.
학교 벤치에 앉아 혼자 몰래 울고 있는데, 누군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그야말로 살금살금 다가왔습니다. 일본유학생 K였습니다. 그는 한국문학 수업 시간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을 듣고, 부지런히 필기를 하며, 질문도 열심히 하는 훌륭한 학생이었습니다. 우리는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만날 때마다 늘 반가웠습니다. K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여울씨, 내가 옆에 앉아도 될까요? 왜 혼자 울고 있어요?”
나는 정신없이 우느라 목이 메어 뭐라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K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통달한 사람처럼, 다른 사람은 듣지 말고 오직 나에게만 들으라는 것 같은 여리디여린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언제든 나에게 말해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위로는 자기 힘으로 혼자 할 수는 없거든요. 누군가 타인의 위로만이 나를 달래줄 수가 있어요.”
그 말에 감동받은 나는 소리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지었습니다. 그 난데없는 감동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내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 모르면서도, 다만 내가 눈물 흘리고 있는 슬픔 자체를 존중해주는 타인의 진심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익숙하게 해주는 위로가 아니라, 나를 잘 모르지만 그저 내가 슬퍼한다는 이유 하나로 내 아픔에 귀 기울여주는 마음이었습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하기에 너무 복잡한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K를 향한 난데없는 고마움이 밀려와 더욱 서럽게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래요, 슬픈 이유는 나중에 이야기해도 됩니다. 지금은 그냥 편하게 울어요.”
그녀 덕분에 나는 내 슬픔과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 앞에서 이상하게도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깨달음이 몰려왔습니다. 슬픔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상처도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슬플 때마다 혼자 울며 안으로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슬픈 이유를 표현하고 타인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몸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고인 감정’은 변화하고, 다른 존재와 부딪힘으로써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혼자서만 스스로 위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버립니다. 당신이 간절히 꿈꾸는 바로 그 격려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비로소 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