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늦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이른 오후, 집과 회사만 오가던 세 워킹맘이 아주 오랜만의 나들이에 나섰다. 높고 맑은 가을하늘 아래 오랫동안 맛있는 수다가 익어가던 한가로운 시간.

글. 백미희 사진. 이도영

  • *해당 기사는 코로나19 방역 수칙 준수 하에 안전하게 촬영하였습니다.

오래 기다려온 한가로운 여유

이제 제법 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오는 어느 맑은 가을날. 평소라면 찾는 이들로 북적일 경기도 안산의 한 카페가 평일 오전을 맞아 한가로운 여유로 가득했다. 레스토랑과 카페, 식물원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에서 차로는 조금 멀지만 푸른 나무와 따뜻한 온실, 풀밭에 한가롭게 뛰노는 토끼를 볼 수 있는 근사한 공간. 오늘 모임을 주도한 안산병원 재활치료실 전희영 대리의 선택이다. 약속된 예약 시간이 되기도 전에 서둘러 밝은 표정의 세 사람이 두런두런 수다 꽃을 피우며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올해로 함께 일한 지 10년 차. 서로의 속사정까지 모르는 것이 없는 단짝 친구들 김현정, 전희영, 조현주 대리다.

I 김현정 I 오늘 정말 오랜만의 모임이에요. 지금 셋 다 육아에 전념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집과 회사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던 와중에, 아이들 없이 한가로운 시간이 정말 절실했어요. 예전엔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어린이집 보내고 회사 갔다가 다시 하원 시키고, 또 아이 돌보느라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었죠.

10년 전, 모두가 미혼이던 시절만 해도 서로 모여 밥 한 끼 먹는 건 일도 아니었다. 매일 퇴근하고 두런두런 수다를 늘어놓으며 방방곡곡 맛집을 찾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 일과를 같이 하는 걸로도 모자라 온천여행을 함께 갈 정도였다고. 셋이 함께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 고기를 구워 먹던 추억은 세 사람에게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나 이제 김현정 대리는 여덟 살과 다섯 살 형제의 엄마가 됐고, 조현주 대리는 일곱 살, 세 살 남매를 키우며, 전희영 대리는 다섯 살 쌍둥이와 세 살 동생까지 삼형제의 엄마가 됐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아이들이다 보니 남편에게 전적으로 육아를 맡기기도 어려운 상황. 아이들 밥을 먼저 챙기느라 자신의 밥은 늘 급하게 해치워버리던 요즘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식지 않은 따뜻한 음식을 천천히 맛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맛집 탐방’을 목표로 잡았다. 아이들 눈치 보지 않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도 마음껏 맛볼 기회. 며칠 전부터 메뉴판을 함께 들여다보며 미리 고른 메뉴가 속속 테이블에 등장했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다섯 가지 스테이크가 포함된 록하트 바비큐. 미국식 훈연 바비큐와 10시간 이상 숙성한 소고기 스테이크, 스모크 치킨, 훈제 삼겹살까지 갖가지 메뉴를 모닝빵과 소스에 곁들여 BBQ 샌드위치로 즐기는 메뉴다. 여기의 셰프가 직접 만들어낸 신선한 리코타치즈에 채소, 견과류, 유자 드레싱이 어우러진 리코타치즈 샐러드, 버섯 페이스트를 넣은 크림소스와 눅진한 향의 화이트 트러플 오일로 마무리한 버섯 크림소스 스파게티, 직접 5시간 이상 훈제한 수제 베이컨이 들어간 매콤한 토마토 소스의 아마트리치아나까지. 진한 맛의 스테이크부터 매콤한 파스타, 신선한 샐러드 조합이 완성됐다.

I 전희영 I 저희가 각자 아이 둘 이상은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들 남긴 것만 먹다가 이렇게 나를 위한 메뉴를 먹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요. 오랜만에 주인공이 된 기분이랄까요? 사실 저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도 참 오랜만이에요. 한 사람이 복직하면, 누군가 육아 혹은 출산으로 휴직하는 상황이 반복이었거든요. 작년에서야 비로소 셋이 완전히 복직하고 함께 일하게 됐죠. 10년 전에도 매일 서로 일에서부터 연애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나눴거든요. 지금은 육아로 주제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모든 이야기를 공유하는 단짝 친구예요. 아마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보다 더 많은 속 사정을 아는 사이랄까요? 각자 같은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니 말이 더 잘 통하기도 하고요. 아이를 키우면서는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육아용품을 나누기도 해요.

빛나는 청춘을 함께 보낸 소중한 인연

일은 때로 고되지만 그 시간을 함께 나눌 소중한 동료를 선물하기도 한다. 때로는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일터에서 만나 속 깊은 이야기까지 마음껏 터놓을 수 있는 존재가 생긴다는 건 누구보다 소중한 ‘내 편’이 있다는 의미. 이제 각자 13년 차로 접어들며 치료실 내에 최고참이 되고 있는 세 사람이기에 서로의 존재가 더 소중하다. 후배 입장에서 선배들을 따라갔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이제는 안산병원 재활치료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다른 이들을 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후배들에게 드러내기 어려운 속내도 세 사람은 함께 의논하고 서로 조언하며 이겨내고 있다. 다만 조현주 대리가 두 사람과 다른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기에, 점심시간 밖에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고.

I 전희영 I 조현주 대리는 늘 차분하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예요. 우리 사이의 지식인이라고 부르죠. 저희가 덜렁거리는 바람에 빼먹는 걸 뒤에서 꼼꼼히 챙겨줄 정도로 믿음직하고 고마운 동료입니다. 김현정 대리는 최고의 공감 능력을 가지고 있죠. 별명이 ‘공정, 청정, 현정’일 정도예요. 누군가에게 힘들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해결해 주고요. 치료실에서도 많은 사람의 신임을 얻고 있는 좋은 동료예요.

I 조현주 I 전희영 대리님은 저희 셋 중에서 가장 귀엽고 발랄한 분위기 메이커예요. 남자아이 셋을 키우면서 점점 더 씩씩하고 활발한 성격으로 변해가고 있죠. 저희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시원시원하게 잘 결정해줘요.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자매 같은 존재이기에 서로의 칭찬을 부탁하는 질문에 세 사람이 쑥스럽게 웃는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칭찬이라도 더 해주고 싶어 열심히 말을 잇는 모습이 훈훈함을 자아냈다. 여유로운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레스토랑의 정원을 거닐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카페로 이동했다. 달콤한 앙버터에 따뜻한 커피.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테라스에 앉으니 그동안의 피로가 눈 녹듯 사그라든다.

I 조현주 I 아마 저희 셋은 정년까지 안산병원의 재활치료실을 지키며 좋은 동료로 앞으로도 꾸준히 함께할 것 같아요. 운명이랄까요. 늘 곁에 있을 거라는 걸 알기에 커다란 포부나 큰 바람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서로 지지해 주면서 곁에서 위안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I 김현정 I 항상 이렇게 서로 믿어주고 도와주고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제일 믿을 수 있는 두 사람이거든요. 앞으로도 이렇게 오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 저희 세 사람의 아이들이 모두 쑥쑥 건강하게 크길 바라요. 전희영 대리님은 병원에서 CS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열심히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랍니다.

뒤이어 나머지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꺼내는 전희영 대리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세 사람 중 가장 씩씩한 성격이지만, 눈물도 많은 그이기에 나머지 두 사람이 익숙한 듯 어깨를 토닥인다.

I 전희영 I 고맙다는 말을 평소에 잘 못했는데, 이렇게 말하려니 괜히 눈물이 나네요. 제가 표현은 잘 못하지만 늘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 해요.

청명한 가을바람에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솜사탕처럼 녹아 흩날린다. 무르익는 계절처럼 세 사람의 우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지기를. 늘 곁에서 든든한 나무가 되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