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는 인천병원의 아침. 안혜숙 청소시인이 지나는 환자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로 인해 요즘은 악수를 나누지만, 예전엔 늘 마음을 가득 담아 포옹을 건네곤 했다.
희망을 노래하며 마음을 나누는 안혜숙 청소시인을 만났다.
청소와 함께 시작한 글쓰기
병원 로비 50평 정도 / 와아아 바닥도 대리석 / 형광등 불빛 아래 / 무대가 반짝반짝 빛이 나네 // 조명 설치도 안 했는데 / 무대가 빛이 나네 // 그 무대에서 기름걸레와 / 함께 춤을 추듯이 / 관객은 몇 분의 환자분들 // 위에서 비추어 주는 빛 / 화려한 불빛은 아니지만 / 보석처럼 영롱한 빛이 // 와아아 나의 무대 / 이 무대에서 시가
- <병원 무대>, 안혜숙
매일 아침 7시, 안혜숙 청소시인의 이른 하루가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 로비에서 시작된다. 50평 남짓의 로비를 청소 카트와 함께 누비는 그녀에게서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나의 ‘무대’라고 생각하는 그의 마음가짐 덕분이다. 조명이 없어도 스스로 자신의 무대를 반짝반짝 빛내는 사람. 이 영롱한 무대에서 그녀는 꼬박 3년 여간 시를 써왔다. 그간 출간한 시집이 세 권. 늦깎이 열정으로 빼곡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 모여 올 12월, 네 번째 시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곳을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그녀에겐 삶과 희망을 나누고 싶은 대상이다. 매일 반짝반짝 닦아 놓은 무대를 지나는 환자에게 이따금 포옹과 악수를 건네며 ‘알지요?’라고 묻곤 한다는 그. 대뜸 건네는 짧은 말에는 ‘제가 당신을 늘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바라요’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긴 말을 건네지 않아도, 안혜숙 청소시인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 환자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곤 한다. 10년 가까이 이곳을 지키며 얼굴이 익숙한 환자에게 응원을 전하는 그녀만의 방식이다.
“2012년 처음 인천병원에 입사하던 당시만 해도 저는 말도 잘 못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랬거든요. 집안 사정이 어려워 학업을 일찍 중단한 이후로 소극적이고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했죠. 친구를 사귀는 대신, 혼자 의미 없이 낙서를 끄적이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시가 찾아오다
아무 의미가 없는 낱말을 적어 보기도 하고 그날의 감상을 쓰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딱히 시를 쓰려는 결심은 없었다. 산문과 시가 어떻게 다른 지조차 잘 몰랐기에, 그저 글 쓰는 일 자체를 순수하게 즐겼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스로 써 내려간 글을 한 번쯤 누군가와 나누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원 내 카페 직원에게 슬쩍 그 글을 보여줬다. 직원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솔직 담백한 내용이 좋다며 안혜숙 시인에게 본격적으로 글을 써보라는 말을 건넸다. 마침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인연으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시 낭송도 감상하고, 문학에 대해 조금씩 관심이 생기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안혜숙 시인은 일찍 학업의 끈을 놓게 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고 누차 말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시를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오전 청소를 끝내고 점심을 먹으면 곧장 병원 뒤편 거마산 자락의 작은 오솔길을 걸어요. 매일 숲 속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시가 되곤 하죠. 휴일에는 집에서 여유롭게 음악을 듣고 차도 한잔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요. 평범한 일상 안에서 잠시 틈을 내어 글을 써보는 거죠.”
차곡차곡 쌓인 글을 모아 2019년 등단을 하고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간 쓴 글을 모아 엮은 시집을 들고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아갔다. 등단하며 받은 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리고 그가 쓴 <나의 엄마>라는 시를 읽어드리던 날,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2개월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직접 쓴 시집을 선물해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안혜숙 시인은 말했다.
“한 번은 병원의 한 과장님께 제가 쓴 시집을 선물로 드렸더니 잘 읽었다며 격려의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이처럼 직원들은 물론 오가며 만나는 환자들도 늘 저에게 힘을 줍니다. ‘우리 청소시인님, 참 반갑고 고맙다’며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네곤 하시죠. 지금의 인천병원 원장님뿐 아니라 전 원장님께서 시집의 추천사를 써 주기도 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강순희 이사장님께도 시집을 보내 드렸는데, 직접 손글씨로 적은 편지와 선물을 보내주셨죠. 시를 통해,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제 삶이 이렇게 달라졌네요.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마음을 나누며 함께 어우러지는 삶
시 쓰기를 통해 알게 된 재능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살아가고 싶다는 안혜숙 시인. 최근 그의 바람은 병원에 시를 나누는 동아리를 만드는 것이다. 산재로 아픔을 겪은 환자 그리고 바쁜 일상에 치여 좀처럼 여유를 갖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 평소 하고 싶은 말을 시로 적고, 발표하며 서로 격려해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지만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으며 시인이 된 자신처럼, 누구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취미 하나쯤은 가지길 권하는 마음도 있다.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작은 취미가 있다면, 자칫 지루하고 팍팍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상도 금세 반짝이는 무대로 바뀌게 될 테니까.
“저는 스스로를 ‘청소시인’이라고 부릅니다. 시를 쓰는 일은 어느 날 문득 시작되었지만, 인천병원에서 청소하며 시인으로 더 성장하고 격려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소박한 시인의 길을 가고 싶어요. 언제나 시와 함께 제멋대로의 이야기꾼이 되어 사람의 마음을 여는 통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현재 상담 공부를 하며 글은 물론 말로도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다는 안혜숙 청소시인.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가 적어 내려간 향기로운 글들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안혜숙 청소시인의 일과 취미를 다 잡는 워라밸의 비결
무엇을 하던 내면의 중심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평소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파악하며, 내면의 힘을 기르세요. 그리고 바라는 꿈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꿈이 없다면 행동이 잘 따라오지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보세요. 내가 좋아하며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작은 시간도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