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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읽기

멈추어 섰던 시간 뒤에
오는 것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한다. 특히나 그 속성이 부정적이고 긴 시간 동안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나 질병은 ‘일상’이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영역을 침범하고, 우리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하기에 상당한 부담과 좌절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멈추어 선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 뒤에도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이 기다리고 있다.

글. 선우현정
임상심리전문가 / 정신건강임상심리사


부정적 기분의 기능주의적 해석

스트레스성 사건 뒤에는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기분 증상을 겪게 되는데,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기분 증상은 불쾌하기에 피하고 싶지만, 우리의 몸과 의식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황에 대비하게 하는 나름의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우울한 기분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불필요한 움직임을 억제하고 내면의 문제에 집중하도록 하는 기능이 있고, 불안한 기분은 다시 유사한 위험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경계 태세를 갖추게 한다.
물론 기분 증상이 과도하고 긴 시간 동안 지속된다면 적응을 방해하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기분 반응은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나름의 기능적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기분 증상을 버겁고 불필요한 것으로만 간주하기보다, 나 스스로 회복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징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고통을 지나 발견되는 것

심리학에는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개념이 있다. 스트레스성 사건을 경험한 이후, 극복 과정을 통해 이전보다 심리적으로 더 성숙하거나 긍정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핵심은 외상에 의한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변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스트레스성 사건을 경험한 개인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상은 안전하다’, ‘나는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다’와 같은 기본적인 세계관이 무너지게 되고, 그만큼 강한 충격과 무력감을 겪게 된다. 이후 반복적으로 사건과 관련된 생각에 사로잡히는 인지적, 정서적 동요가 일어나는데, 이는 사건을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지나가면 사건을 점차 삶의 맥락 속에 통합하여 반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존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수정되어 사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며 내 삶의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은 이전보다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내 삶의 소중함을 더욱 명료하게 알아차리게 되고,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확장되거나, 어려움을 극복한 자신의 숨겨진 자원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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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회복의 의미

스트레스성 사건을 겪은 직후, 우리는 어쩌면 ‘회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게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회복의 의미를 사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실망감과 좌절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회복은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이전과 다른 차원의 단단함을 갖게 되는 성장에 더 가깝다. 그것을 인지하면 더 희망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지금의 고통을 감내하게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경험을 통한 삶의 확장

직장 복귀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심리적 태도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복귀는 단순히 과거의 노동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단절 이후 삶의 연속성을 스스로 증명해 내는 과정이 될 것이다. 물론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지만, 사고 후 겪는 심리적 위축은 역설적으로 일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계기가 되고,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적응 기제를 발달시키며 한층 성숙한 직업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외상 후 성장이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외상 이후의 심리적 회복에는 충분한 시간과 지지적인 환경이 필요하다.
가족과 동료의 이해, 조직의 배려, 그리고 필요할 경우 전문적인 심리적 지원은 개인이 경험을 정리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직장 복귀 과정에서는 개인의 회복 속도를 존중하고 단계적인 적응을 지원하는 환경이 조성될 때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 회복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회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과제가 아니라 개인과 환경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한다.

다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직장으로 돌아가는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삶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으며,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삶과 일을 바라보게 된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회복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확장된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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