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최근의 근황을 여쭙고 싶어요.
저는 현재 인천 장애인체육회 골프선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골프를 시작한 지 이제 4년이 훌쩍 넘어가네요. 아마추어로 시작했지만 2021년 첫 경기에 나서고, 이듬해 6월 인천 장애인체육회에 소속되어, 2023년부터는 전국체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천어울림체전에서는 종합 2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이후 자동차 부품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기업 코넥의 실업팀 선수로 등록되어 훈련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산재 이후에 생각지도 못했던 골프선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셈이지요.
전에는 기계업체의 공장장으로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2019년 8월 30일, 한창 작업을 하던 중 옷소매가 기계에 끼었어요. 순식간에 오른손까지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지요. 제가 공장장이니 빠진 손을 붙잡고 현장을 정리하고 아내에게 연락했어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합니다.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지만 오른손 위 전완부, 즉 팔꿈치와 손목 사이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당시를 회상하기가 쉽지는 않아요. 저는 물론 가족에게도 큰 충격과 상처였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어떡하지’하고 망연자실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미 팔은 잃었고, 저에겐 앞으로의 현실이 남아있었으니까요. 당시 수술한 병원에서 어느 정도 회복하자마자 계단 오르내리기부터 시작했지요. 그러던 차에 재해 관련해서 상담 차 알게 된 분이 인천병원에서 재활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하시더라고요.

인천병원과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처음 인천병원에 대한 얘기를 듣던 당시에는 시큰둥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천중앙병원’은 지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거든요. 그런데 막상 검색을 해보니 다르더라고요. 저 같은 산재환자를 위한 병원이었습니다. 처음 인천병원에 입원하던 날, 최옥순 수간호사 선생님부터 병동 식구들, 치료 보조해 주시는 여사님들까지 모두 환한 얼굴로 반겨주셨어요. 지금도 그때 그분들의 표정과 이름이 생생해요. 수술하고 치료하는 동안 자란 손톱을 하나하나 깎아 주시고, 등을 토닥이셨죠. 코로나19 전에 입원을 해서 외박이나 외출이 가능했는데, 주전부리를 사 와서 선생님들과 환자들이 같이 나누어 먹기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참 따뜻하게 지냈어요.

입원 중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수재활 프로그램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천병원에 와서는 사고를 돌아보는 대신 앞으로 나아갈 길만 생각했어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병원 앞 산을 한 바퀴 돌고 있으면 지금은 재활의학연구센터장으로 계신 이강표 과장님을 비롯한 의료진과 연구원들이 출근하세요. 반갑게 인사하고 특수재활을 하러 지하 1층으로 내려가지요. 수영에서 탁구, 목공예, 원예까지 정말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재활치료실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저보다 중증 치료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재활을 이겨내는 다른 환자를 보며 힘을 냈습니다. 마음부터 강해지는 생각으로 하루 3만 보 이상 걷기에도 도전했고요. 특히 이보영 치료사 님의 권유로 남은 왼손의 힘을 키우기 위해 시작한 탁구 프로그램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세나 힘을 쓰는 방법까지 한용수 치료사님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아마 그때의 경험이 아니었다면 지금 제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2020년 말까지 전문 재활 치료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치료를 받으며 아내도 곁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힘이 되고자 입원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통원 치료를 시작했어요. 전문 재활 치료를 이어가는 한편, 재활공학연구소를 통해 의수를 지원받았습니다. 의수를 활용하면 물건 잡기는 물론 원직에서 하던 업무까지 가능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고요. 그렇게 퇴원 후 원직과 비슷한 일을 하던 가족을 돕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고, 취미로 시작한 골프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지요. 선수로 활동하기까지도 인천병원의 도움이 컸고요. 한용수 치료사 선생님께서는 제가 골프 연습을 하는 모습을 찍어 보내면 일일이 사진에 자세에 대한 코멘트를 적어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전국체전에 나갔을 때는 마치 자기 일처럼 눈물을 흘리셨죠.
선생님께 인천병원은 어떤 의미인지요?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언제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인천병원 가족의 얼굴과 이름이 제 마음속에 있습니다. 지금도 인천병원과 재활공학연구소를 자주 오가고, 또 제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 보탬이 되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희망과 행복을 얻었으니까요. 저에게 인천병원은 아픈 시기에 찾아온 기적 같은 행운입니다. 인천병원에서 받은 용기를 다른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어요. 앞으로 프로 골프선수로 열심히 노력하는 한편, 저와 같은 산재환자에게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계신 산재환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살면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고를 당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좌절과 고통이 큰 만큼 저 역시 아직도 힘들지만 그래도 일단 받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달라진 인생을 맞이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재활 치료 수준은 매일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아파도 힘들어도 재활치료사 선생님을 믿고 운동에 나서 보세요.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는 운동 만한 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근로복지공단 병원에 왔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의료진을 믿고 자신 앞에 주어진 새로운 행운의 길, 삶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